'척'으로 통과한 날들.
“두두두둥, 두두두둥.”
잠실 상공, 반짝이는 불빛이 공기를 가르며 내려왔다. 헬기였다. 비욘세가 도착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시작이었다.
브랜드실 신입이던 나는 쇼핑 파트에 있다가 선배 찬스로 현장 스태프에 투입됐다.
비욘세 대기실 앞, 생수를 든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공연 막간에는 VIP 회원 의전을 위해 나눠 줄 물품을 정리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비욘세의 에너지는 구역 구분에 관심이 없었다. 그루브는 역할과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고깃집에서의 뒷풀이. 의전팀과 브랜드실 관리자, 현대카드 부회장님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날것의 고기 같은 싱싱한 기술들이 파인다이닝의 반찬처럼 우아하게 오갔다.
부회장님이 먼저 일어나려 하자, 가발을 새로 맞춘 연배 있는 실장님이 말했다.
“바지가 너무 멋지십니다.”
패션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나름 많은 로고를 그림판으로 따던 나도 처음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바지로 쏠렸다. 당시 금융회사의 복장은 정장이었고, 캐주얼 착장을 처음 마주하며 옷의 센스와 취향에 비욘세에 이어 감탄했다. 부회장님은 신발 끈을 묶으며 말했다.
“다음에 와인 한 번 하시죠.”
헬기, 잠실 공연장, 블랙진.
2007년 11월, 자본주의와 감각이 퀀텀 점핑한 순간이었다. 해외 유명 대학, SKY, 맥킨지 출신 선배들 사이에서 최연소, 최초 지방대 타이틀은 가볍고도 무거웠다.
좋은 선배들 덕분에 스펙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부여받았지만, 스스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데는 에너지가 꽤 많이 들었다.
12년 전, 매거진 첫 인터뷰 대상자로 참석한 날. 서촌 mk2 앞, 스테인리스 바에 툭 걸터앉았다. 현대카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는 대신, 매거진에 노출되는 레퍼런스는 '척'을 위한 좋은 재료였다.
다시 네 명으로 시작한 팀. 대표님은 현대카드 아이덴티티에 지분이 있는 분이었다. 블랙 회원 커미티부터 컬러 카드 페르소나까지, 취향을 구조로 만들던 사람. 서울대 UX학과에서 강의도 하며 스타트업 파트너들과도 활발히 협업하던 인물이었다.
2015-16년. 다이슨, MoMA(뉴욕 현대미술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4자 계약을 체결하는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당일, 발표자였던 UCLA 출신 실장님은 갑자기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냥 놓고 가고 싶은 날의 쾌감. 남은 사람이 나였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자료 준비를 내가 했지만 글로벌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영어는 서툴렀고,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뿐이었다. 유능한 대표님 혼자서 모두 커버 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표님이 실무 발표를 진행하는 건 그 시절엔 전략적으로 매우 어색했다.
대표님께서 뒤에서 알아서 해 주실 거라고 믿으며, 덤덤히 생수를 챙겼다.
마지막 생수를 앞에 놓고 나는 침착하게 마이크를 들었다.
“실장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여긴 한국이니, 한국말로 진행하겠습니다.”
영문화된 자료가 있었던 터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전략이 맞다고 판단했다.
“다다닥.” 이탈리아, 홍콩, 미국, 한국의 실무자이자 결정자들이 파도를 타듯 노트북을 열었다.
맥 키보드 타건보다 좋았던 그 소리의 쾌감. 그날, 나만의 K 에너지가 시작됐다. 결과는 계약 체결. 키맨들은 말했다. 실력은 이미 검증됐고, 처세와 기세를 봤다고.
다음 날 나는 연차를 쓰고 수액을 맞았다. 괜찮은 척 함부로 쓴 세포들은 생각보다 오래 삐쳤다.
최근 흑백요리사2 마지막 장면에서 ‘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울컥했다. 그들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나를 봤다. 요즘 나는 안다. 어떤 ‘척’은 기술이자, 꽤 많은 에너지를 먹는 태도라는 걸. 업종은 달랐지만, 버티는 방식은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세상은 대체로 이런 ‘척’을 그런대로 용납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고 할 수 있는 시대라, 감사한 척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