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고향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잠깐 다녀가기만 했던 예년과 달리 3박 4일을 시골집에서 보냈다. 시골집에서 보내는 동안 여러 신박한 일을 경험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시골집에서 처음 맞닥뜨리고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고향산천이 변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직접 경험하고 나니 어쩐 일인지 난감한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를 만났다. 그림책에서 보았고,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었다. 멧돼지가 동네까지 와서 고구마 밭을 파헤치고, 닭이며 가축들을 잡아먹곤 한다는 이야기였다. 직접 마주치기는 처음이었다.
멧돼지가 내가 산책하려는 방향의 도로가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섰다. “우우”소리를 지르며 약간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콧김을 내며 다소 화가 난 듯했다. 등치는 아주 크지는 않았고 중간정도였으며 연한 갈색 털로 덮여있고 등위로는 진한 갈색 줄무니가 서너 줄 보였다.
'으이, 무서워'
'멧돼지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언젠가 만화책에서 보았던 일을 생각했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는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성질이 사나운 멧돼지기 공격할 수 있으니 뒤를 보여주지 말고 눈을 마주 보며 천천히 피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3~6월경 산란철에는 멧돼지 주위에는 새끼가 있고 먹이를 구하러 마을까지 내려오는 산짐승이 포악해진다고 한다.
나는 가려던 길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붙잡혀 서고 말았다. 대신 멧돼지를 쫓아보려고 멧돼지를 따라 소리를 냈다.
"우우" "우우"
내가 소리를 내면 멧돼지도 소리를 냈다. 몇 번을 그러기를 반복했다.
멧돼지가 어느새 산 쪽으로 난 길로 모습을 감췄다. 멧돼지가 산속으로 갔으니 나도 가던 길을 걸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웬걸 멧돼지는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도로에서 가까운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우우"소리가 곧이어 들려왔다.
'와아~ 이거 뭐야. 왜 안 가고 그러는 거야?'
나도 다시 멧돼지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우우"
"우우"
몇 번을 나와 멧돼지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이쯤 되니 멧돼지는 나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애초에 가려던 큰 마을 쪽으로 가지 못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은 멧돼지를 만났던 곳에서 느리고 여유 있으며, 위협적이지 않게 도로를 가로지르는 너구리인지 담비인지를 만났다. 나의 존재를 모르는 듯했다. 숲 속에 사는 또 다른 짐승인가 보다.
다행이라 여기며 가려던 길을 걸어가려던 찰나 검은 개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며 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지켜서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날 만났던 멧돼지 생각도 났다.
"와~ 이건 또 뭐란 말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공포란 무엇인가? 유전학적으로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그래, 그런데 왜 이렇게 소름이 돋냐고...’
닭살이 솟아난 팔을 쓰다듬으며 무서움을 달랬다. 이성적으로 공포를 다스려보고자 하는 마음.
마음을 다 잡고 도로의 바깥쪽으로 비켜서서 검둥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소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가. 저리 가."
잠시 나를 노려보며 몇 번 짖어 대던 검둥개는 엉덩이를 보이며 뒤돌아갔다. 검둥개가 엉덩이를 보였다는 것은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나도 가려던 방향으로 길을 잡아 아침 산책을 계속했다.
한 시간여 마을과 들판을 거닐었다. 부모님이 농사짓던 모습, 어릴 적 농사일을 돕던 일도 떠올렸다. 고단하기만 했던 농촌 살이가 마치 풍경화처럼 아련했다. 이곳은 목화밭, 고추밭, 옥수수밭이었는데... 여기 논은 우리 논, 저기는 친구 누구의 논, 모내기 줄을 잡던 일, 벼베기가 한창일 때 새참을 내어가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느 누가 짓고 있는지 모르지만 벼들이 여물어가고 있다.
새벽안개가 걷히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동쪽하늘이 붉어지고 아침해가 산 위로 뿅 솟아오르며 구름사이로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듯하더니 그 모습 당당히 떠오른다.
멀리 산자락을 타고 있는 새벽 운무는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모습이 하늘로 승천하는 신비스러운 이의 움직임인 듯하다. 날이 밝아올수록 운무가 걷히면서 산의 푸르른 모습이 드러난다.
농로를 따라 걷는 산책길에 만나는 꽃들이 많다. 달맞이꽃, 달개비꽃, 나팔꽃, 칡꽃, 장록꽃 등등 아무렇지 않은 듯 피어 있는 들꽃들이 그지없이 반갑다. 과거에는 하찮게만 여겨지던 꽃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
고개를 들어 멀리 산과 마을을 바라본다. 새벽이 걷히는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고 섰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다. 과거에는 식수로 사용했고, 물고기가 많아서 낚시를 하던 곳이다. 저수지 주위로는 논밭이 있고, 몇 가구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지금은 가구는 사라지고 논과 밭만 그대로다).
저수지 옆에는 작은 소나무 숲이 있다. 저수지 근처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소나무 위에 하얀 물체가 있었다.
"어! 저건 뭐지?"
하얀 백로가 아직 깨지 않은 잠을 자며 졸고 있었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백로다. 언제부터 이곳에 날아와 둥지를 틀었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부터 살고 있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백로가 졸고 있는 소나무 숲을 가까이서 지나칠 때 여러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매우 시끄러웠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수지가 가까워 먹이를 구하기 쉬웠고, 숲이 우거졌으니 새들이 서식하기가 좋았나 보다.
저수지뿐 아니라 들판에는 무논이 많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던 논은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아서 무논이 되어 습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 무논에는 까치며 황새며 몇몇 이름 모를 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있고 무논이 여럿 있으니 새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백로의 서식지로도 안성맞춤이 되었나 보다.
젊은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만 해도 좀 더 많은 곡물을 수확하기 위해서 농약을 많이 쳤다. 그러나 지금은 농약을 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농부들이 팔십이 넘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농사를 짓지도 못하며 일손이 부족하여 할 수도 없다.
노는 땅이 늘어가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예전엔 깊은 산자락까지 가서 밭을 일구곤 하였지만 지금은 동네 근처의 밭조차 묵힌 땅들이 많다. 우리 집만 보아도 그렇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고 형제들 중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없다. 논과 밭은 자연히 풀로 가득 찼다.
숲은 벌목과 벌채가 없고 드나드는 이 하나 없으니 풀과 나무로 빽빽하게 우거진 지 수십 년은 되었다. 숲이 우거져서 한 발자국도 숲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어릴 때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하러 숲으로 가곤 했다. 집 근처 숲에는 긁어모을 가리나무(소나무잎사귀)가 없어서 먼 숲까지 가야 했다. 농촌에 사람이 살지 않기도 하지만 난방이 기름과 태양열 에너지로 바뀌면서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벌거숭이 산은 산짐승들이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 되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나무와 풀, 짐승과 새들이 살기 좋은 천국이 되었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산업이 도시화되면서 변화하였다.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든다.
그 이튿날은 거실에 누워 있는데 새 한 마리가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밖에서 들어온 참새려니 했다. 창문과 방문이 모두 닫혀있는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새는 갈지자로 여기 벽에 쿵, 저기 벽에 부딪히며 갈길을 잃었다.
어 그런데 가만 보니 참새가 아니다. 박쥐다. 박쥐가 어디서 들어온 걸까? 박쥐는 낮엔 자고 밤에 활동하는 동물인데 어찌 된 일일까?
집안으로 어찌 날아든 것인지 모르지만 박쥐를 밖으로 쫓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좌충우돌하던 박쥐는 순식간에 거실 형광등과 천장 사이의 공간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빗자루를 들고 두드리며 나오라고 집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쥐를 어렸을 때 몇 번은 보았으려나 싶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박쥐를 보았던 기억조차 없는데 박쥐를 고향집에서 만나다니...
박쥐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에서만 산다고 한다. 그만큼 고향이 청정지역이 되었다는 의미 일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박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았다. 우리나라 박쥐는 해롭지 않은 경우가 많단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로 집안에 박쥐가 살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박쥐가 옮겼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박쥐가 언제부터 거실 형광등과 천장 안쪽에서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은 밖으로 나가도록 해야 했다.
소방대원들이 벌집을 퇴치해 주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보았던 지라 119에 신고를 했다. 거실 천장이 높았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소방대원은 파리채를 공간 사이에 넣고 들쑤셨다. 가끔 소방대원이 어떻게 해도 박쥐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느새 박쥐가 포로로 나오더니 소방대원 가슴팍에 쿵, 거실벽에 쿵 하더니 열린 창문을 통해 산 쪽으로 훨훨 날아갔다. 날개 끝이 조금 뾰족하고, 몸집에 비해 조금은 긴 날개며 천천히 우아한 듯 상하로 움직이며 펼치는 날갯짓이다. 날갯짓하는 모습이 딱 박쥐였다.
'그래 멀리멀리 날아가라.'
"시골에 박쥐까지 쫓아주신 소방대원님 고맙습니다."
여름휴가 기간 신박한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고향산천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저 깊은 산속에 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깨끗하고 공해 없는 자연환경은 좋고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농촌이 고령화되어 빈집이 늘어가고 인간은 없어지니 자연만 남는 것 같다.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