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더 많이 읽고 싶지만 여전히 시집을 고르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자주 가는 서점에서 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문단에서 활동하신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도. 돌이켜보니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보다가 너무 좋아서 찍어뒀던 시를 쓰신 분이었다.
너무 어려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쓸모없었다. 시집은 열자마자 후다닥 한 번 쓰윽 읽어냈다. 쉽게 와닿고 재미있고 좋았다. '아무 날이나 저녁때'라는 시조차 좋았다. 시들이 다 좋았지만 그 중 끄적거리고 싶었던 시는 <간발>이라는 제목의 시였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뒤에 나온 이야기가 마음에 확 꽂혔다.
이미 태어나버린 나이기에 주어진 삶을 당연하게 생각한 적이 훨씬 많다. 너무 힘들 땐 살아내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이 태어났다는 이 문장 하나가 내가 지금 존재하기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과학적으로 라면 수많은 정자와 난자의 이동 속에서 아주 우연히 만나 생명체가 만들어진 것이고, 조금 더 평범하게는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과정 중에 어느 작은 하나의 만남이라도 간발의 차이로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는 거다.
신기하면서도 무섭기도 하고 어떤 '일'이라는 게 일어나는 건 수많은 '일'들이 그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이소라의 <Track9>이라는 노래가 바로 떠올랐다.
어디서 언제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도 모른 채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게 사람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존재 자체가 너무 허무하기에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래서 왜,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하곤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특히 그랬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맺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그럴듯한 의미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는 거창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일이나 관계 속에서 있을 때의 내 감정과 기분이 괜찮은 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존재하기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살아가면서는 내 마음에 더 많은 자리를 내어주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시와 노래였지만, 되새기면서 어떻게 하루를 보낼 지 생각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