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게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독후감을 쓰는 등의 숙제를 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땐 수업이 듣기 싫어 읽기도 어려운 유명한 책들을 펼쳐놨었다.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는지 허세였는진 잘 모르겠다. 그리곤 책과는 담을 쌓았다 생각했다.
첫 직장 생활을 지방 공장에서 시작하며, 작은 힘듦이 쌓여가던 어느 날,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던 것 같다. 끌리는 책들이 있으면 사서 읽곤 했고 지금까지 계속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읽어야 하는 것 대신 "읽고 싶은 것"을.
못지않게 드라마도 굉장히 좋아한다. 그중 최근(?)에 방영한 <로맨스는 별책부록>는 책과 출판이라는 주제에 드라마라는 형식이 더해져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연기도 한몫했다. 드라마 제목에 버젓이 로맨스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뻔한 연상연하 로맨스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단녀 이야기와 작가, 출판계 사람들의 일과 삶에 더 눈이 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크게 울렸던 건, 그리고 정말 눈물을 쏟게 했던 건 마지막 회에서 명작가였던 아버지가 편집장이자 작가인 아들에게 남긴 편지 하나.
힘이 들 때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 때가 있었다. 마치 그 안에 힘듦을 벗어날 수 있는 단방의 해결책이라도 있는 듯이 책 속에 빠졌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며 깊이 공감했다. 반복된 일상에 지쳐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책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잘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사람들에겐 작은 위로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래 맞아, 진짜 힘들었겠네", "나도 그런 적 있었어, 너만 그런 거 아냐.", "지금 힘든 거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와 같은 말. 그러니까 작은 공감과 그저 "괜찮다"라는 말 한마디. 그게 곧 한 권의 책, 그리고 그 책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담겨 있는 문장은 마음을 울린다. 여러 책들을 읽어오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바뀐 경험도 꽤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좋은 책은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아 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혼자서 쓰는 글이 아닌 누군가가 보는 글이 되는 순간, 그 글을 읽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이왕이면 그 영향이 좋은 거였으면 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책 같은 사람이 생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