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답고 찬란한? 아니, 힘겨웠던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다.
바쁘게 살아온 인생, 퇴직을 앞두고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30년이라는 시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문득 첫 직장이 떠 오르는 것은 "나름 열심히 살았잖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애들 키웠고, 머무를 집도 하나 샀고, 오래도록 일한 직장 아름답게 퇴직하는 거잖아~" 아마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토닥거리는 자기 방어 본능이리라~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땐 그랬었지~"라는 말을 되뇐 적이 있다. 내가 첫 직장에 취업하던 때가 그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1994년이었던 것 같다.
가난했던 시절, 대학 내내 일을 해야만 했다. 돈을 벌어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카페에서 서빙도 하고, 주유소에서도 일하고, 직접 포장마차를 만들어서 떡볶이, 홍합을 팔기도 했었다. 결국 돈을 많이 주는 막노동 중 "쓰미"라 불리는 "벽돌을 쌓는 기술자"에게 벽돌을 날라다 주는 일을 꽤 오래도록 따라다녔다. 방학이면 막노동 오야지를 쫓아다녔다. 그 돈으로 용돈도 하고, 학비도 내곤 했던 것 같다. 졸업하는 것이 목표이었던 시절이긴 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버지가 대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막노동의 잡부로 일을 다니셨다. 견딜 수가 없었다. 힘겨운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이른 저녁부터 피곤에 지쳐 나지막한 코를 고시며 주무시는 모습을 보며, 일찍 취업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공무원 시험을 보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상황은 아니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중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고 취업을 했다. 서울에 연고라고는 단칸방에 세 식구가 살고 있는 막내누이밖에는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던 날 어머니가 "12만 원"을 손에 꼭 쥐어 주시더니, "누이집에서 당분간 다녀라, 돈을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 아껴 쓰고~"
반지하 단칸방 누이집에 도착했다. 함께 자야 한다. 매형과 누이, 그리고 어린 조카와 함께 자야 한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때는 다 그렀으려나~
누이의 집은 성수동인데, 직장은 목동이다. 멀다. 그렇게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누이와 매형이 부부싸움을 할 때면 조용히 나와 성수동 한강변을 걸었다. 한강변에서 바라보는 아파트들의 불빛들이 만들어 내는 야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 많은 집들 중 내 집은 없다."
불편한 동거를 하던 중 반대편 지하방의 이웃이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보증금 없이 월세로 살아보겠냐는 제의에 혼자서 사는 삶을 시작했다. 박봉이긴 했지만, 차비와 식비를 제외하곤 모두 모아서 1년이 되기 전 신월동 반지하방으로, 전세로 옮기게 되었다.
신월동 빌라의 반지하방 전세, "기생충"의 반지하방보다 좁은, 그런 첫 번째 나만의 공간이었다.
누워서 2바퀴 정도 구르면 벽에 닿는 좁은 방이었다. 화장실은 공용화장실이다. 요즘엔 당연히 없겠지만 보일러는 "곤로보일러"이었다. 등유를 넣고 심지를 올려 불을 붙이면, 물을 데워 보일러 역할을 하는 그런 방이었다. 작은 창문은 도로와 접하고 있다. 창문의 눈높이에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다. 비가 오면 습기가 차서 이불이 무겁다. 그래도, 혼자 사는 공간이 좋았다.
어머니에게 돈을 부쳐드려야 했다. 월급의 반을 부쳐드렸다. 돈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날은 25일이었다, 20일쯤 되면 연료를 살 돈이 간당 간당하다. 가끔 냉방에서 잔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반찬은 누이가 가져다준 김치 밖에 없다. 그 시절 밥솥은 압력밥솥이 아니다. 마마밥솥이란 브랜드이었던 것 같은데, 밥을 하면 찰기가 없다. 도시락을 싸면 점심시간쯤이면 밥이 약간 삭는다. 그런 밥을 먹었다.
운동화는 하도 오래 신고 다녀 접히는 부문이 벌어져있다.
그때쯤 타지생활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당연하다 생각했으니까~
월급날 D-5일 정도면, 차비 빼고는 돈이 하나도 없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월급의 반을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고 나면 저금이란 것은 꿈을 꿀 수가 없었다.
돈이 없어서 그랬을까? 힘들어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소주 한 잔 생각이 나는지...,
슈퍼로 간다. 슈퍼 주인에게 "요 앞 빌라 지하에 사는데, 돈이 없어서 그런데..., 주민등록증 맡기고 소주 좀 살 수 있을까요? 월급 받으면 같다 드릴게요~"
"가지고 가"란다. 그 시절엔 그게 됐는가 보다. '타지 생활에 힘겨워 소주 한잔하고 싶다는 것을 알았을까?'
김치찌개를 끓인다. 소주 안주이다. 김치찌개에 소주를 한 잔 한다. 창문밖으론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냉방이다. 기름이 떨어졌으니까~, 소주가 들어가니 몸이 따듯해진다. 점퍼를 두 겹으로 껴 입었다. 술김에 잠을 청한다. 이불이 무겁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직장동료가 깨우러 왔다." 왜 출근을 안 하냐고..., " 습기에 눅눅하게 무거워진 이불을 걷어내고 급하게 출근을 했다.
그 당시 꿈이란 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것 같았다.
시간 날 때마다 공중전화로 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밥 잘 먹고 다니니?, 잘 지내니~, 언제 내려올 수 있니~"라고 하신다. "괜찮아요, 잘 지내요, 시간 내서 내려갈게요. 아무 걱정 마시고 잘 지내세요~" 전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하루는 잠을 자던 중 매캐한 연기가 방으로 들어와 부엌을 내다보니 곤로보일러 위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조금 더 불길이 번지면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세수대에 있던 물을 곤로의 심지를 향해 뿌렸다. 다행히 심지가 물에 젖었는지 불이 꺼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자다가 죽어도 모를 그런 타지생활에 익숙해지는 듯싶었다. 외로움은 생활이고, 가난은 당연함인 시절이었으니까~
그 아름답고 찬란한? 아니, 힘겨웠던 나의 첫 직장이란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다.
퇴직을 앞둔 시간,
왜 첫 직장 생각이 나는 걸까?
어머니가 손에 꼭 쥐어주시던 12만 원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지하단칸방에서 누이의 가족과 함께 지나던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힘들었지만 어머니에게 돈을 빠지지 않고 붙여주던 그 시절, 그냥 그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