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지우라 한다. 누군가는 기억하라 한다. 기억하기로 했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퇴사라는 절차를 남겨둔 모든 이들은
철학자가 되는 것 같다.
뜬금없는 철학적 질문에, 생각이 멈춘다.
직장이란 굴레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에 함께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지우라 한다.
누군가는 기억하라 한다.
기억하기로 했다.
시간을 되돌려 보았다.
본사에서 공장의 장으로 발령받던 5년 전
낯선 사원들과의 첫인사
그 서먹 서먹함의 첫 만남
워커 홀릭인 공장장을 만나
모두가 많이 힘들었을 사원들
서로 다른 방향성과 가치관은
"안 돼요"
"해봤어요"
"사람 더 주세요"
라는 단답형의 끝없는 도돌이표 대화로 마침표를 찍는다.
의견은 10%
경청은 90%
힘든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 1년
같은 방향과 가치관은
"할 수 있어요"
"생산물량 더 주세요"
"하니까 되네요"
대화가 바뀌었다.
현장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역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리더들의 업무처리 기준이다.
그다음이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그리고, 퇴근시간이다.
불규칙한 퇴근은 불편하다.
곧 불만이다.
공장을 운영한다는 건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과 같다.
현장에 답이 있다.
정답이다.
아무리 사무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조직활성화를 해도,
진심으로 마음을 열지 않는 모든 행사와 기획은
단발성으로 끝난다.
고기를 세절하는 축산물전문제조공장,
칼을 많이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칼의 날이 항상 잘 서있어야 덜 힘들다.
그러나, 칼 가는 게 쉽지는 않다.
여사님들이 가장 힘든 건, 칼이 잘 안 든다는 것인데...,
현장을 잘 모르는 사무실의 관리직은 생산성이 낮다고 잔소리를 한다.
독일산 칼 가는 연마형 자동칼갈이를 현장에 사주었다.
대략 700만 원 수준 했던 것 같다.
자동 칼갈이가 들어오던 날
수십 자루의 여사님들 칼을 갈아드렸다.
칼 가는 방법을 여사님들이 익혔다.
손목이 덜 아프단다. 칼이 잘 드니까...,
지방제거, 세절, 담기, 포장, 라벨, 박싱 하는 공정을 1개의 생산라인이라 한다.
1개의 생산라인은 대략 5억~7억의 고가장비들로 구성이 된다.
생산라인의 Lay-Out을 설계할 때 보통은 관리직들이 기계를 납품하는 공급업자와 협의하에 그린다.
생각을 바꾸어 보았다.
현장에서 사용해 본 사원들 보고 라인을 그려보라 했다.
이동동선은 최소화, 인력배치를 합리적으로, 자동 컨베이어벨트의 레이아웃을 그려왔다.
관리직들이 그려온 레이아웃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
현장 사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생산라인을 구축해 주었다.
그들의 표정엔 전문가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들은 고기 공장의 현장 운영에 있어서는 전문가이다.
각자 분야가 다를 뿐이다.
축산 전문가들이기에 축산경진대회를 개최해 보기로 했다.
외부에서 심사위원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평가의 기준도 마련했다.
남사원들은 상품제안, 고기케이크 만들기, 캠핑 등의 주제로,
여사님들은 파트를 나누어 정중량 팩상품을 시간 내 많이 담기를 진행했다.
물론 상금도 두둑이 걸고...,
파트별로 경쟁을 하니, 파트장들이 별도로 모아서 가르치기도 한다.
열기가 뜨겁다.
일만 할 수는 없다.
파트별로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했다.
토너먼트로 진행했다.
점심시간이면, 파트를 응원하느라 경기장이 가득 찬다.
박스에 응원의 문구를 담아 피켓 대용으로 흔든다.
근무하는 사원들이 많으니, 사회인 체육으로 배드민턴을 꾸준히 하시는 분들이 있어
시합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청소도 시상금을 걸면 재미있다.
명절이 지난 후 작업장, 창고 믹싱하우스(물청소)를 해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청결콘테스트틀 주제로 시상금을 걸면, 더 깨끗하게 한다.
현장에서는 그런 시상금들을 모아 간단한 회식을 진행하는 듯싶다.
명절이면, 관리직들도 모두 현장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도록 지시한다.
칼질을 하는 관리직 사원들은 각 파트에 맞게 배치하고, 현장 직원들과 동일하게 작업을 한다.
칼질이 서툰 직원들은 세트를 포장하는 것을 돕는다.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관리직과 현장직이라는 벽을 허문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원들의 얼굴이 밝다.
더운 여름,
사무실에서는 냉장고가 있으니, 아이스커피를 주로 마신다.
현장 여사님들이 점심 식사 후에 식당에서 뜨거운 믹스커피를 마신다.
아쉽다. 식당에 제빙기를 설치해 주었다.
얼굴이 밝다.
그 시간들이, 그 시간들 속에 그 사람들이 그립다.
숫자로 보지 않고, 사람을 보았더니, 숫자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아마도, 그 시절 역대 최고의 실적을 냈던 것 같다.
떠나면, 그리울 사람들
그 추억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