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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antmatch Production Mar 01. 2020

프롤로그

사람은 걷는다. 집을 떠나서 낯익은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사색에 잠겨 홀로 걷다가 대화와 논쟁을 하며 같이 걷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오와 열을 맞춰 수백 수천 명이 제식을 하고 일렬로 행군을 한다. 아침엔 옷깃을 여미고 도망치듯 걷고 저녁엔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춤추듯 걷는다. 친구는 어깨동무를 하고, 손자의 뒤늦은 귀가에 애가탄 조부는 애써 뒷짐을 지고 걷는다. 우산을 들고 비를 맞기 위해서, 때로는 소복히 쌓인 눈밭에 제일 먼저 발자욱을 남기기 위해서, 아니면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가족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우린 걷는다.


어쩌다 지평선 너머의 세상, 혹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맥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서 낯선 길을 걷기도 한다. 오솔길 없는 산을 타고, 걸을 수 없다면 콜롬버스처럼 배를 타고, 그것도 안되면 망원경으로 저 하늘을 바라본다. 닿지 못한 곳을 우린 멍하니 바라본다. 대체 저기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창 밖으로 달을 보고 옥상에서 먼 곳을 응시한다. 아마도 길이 있든 없든 우린 걸을 것이다. 걷는 것과 여행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휴가철이 되면 뉴스에서는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다. 해수욕장에 꽉 찬 인파, 웃느라 친구들과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아이들, 자신의 몸을 과시하려는 사람들, 인산인해인 공항. 올해는 해외 여행자 수가 사상 최대였다는 소식.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가 어딜 갔는지 거기서 무얼 했는지가 화제가 되고 멋드러진 배경에서 활짝 웃는 사진을 들고와 자랑하기도 한다. 왁자지껄. 깔깔깔. 주위는 여행 이야기로 가득찬다. 그 중에 여행에 좀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콧대를 높히며 아는 체를 한다. 우린 그 얘기가 잘난 체인지 알지만 웃으며 들어준다. 우린 여행을 먹고 마시는 일과 같이 친근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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