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뽀야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ephantmatch Production Nov 30. 2016

[개를 인간으로 대하는 방법]

"저는 뽀야가 진짜 개가 맞을지 생각합니다"

새벽 다섯 시입니다. 제 베개를 점령한 뽀야 때문에 비몽사몽 이 글을 씁니다. 가끔 뽀야가 진짜 개가 맞을까 생각합니다. 기호가 너무 뚜렷해서 마치 사람 같습니다. 자는 것도 딱 원하는 위치가 있나 본데, 베개에 눕는 것은 편해서라기 보다 제가 베개를 베고 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 하는 것이죠. 그래도 귀여워서 머리를 포개어 발을 잡곤 합니다. 그러면 성깔을 부리며  홱 잡아 뺍니다. 한 번쯤 봐줄 것도 같은데 사춘기 딸내미 같습니다. '아이! 아빠, 짜증 나'  


한 번은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제 눈을 바라보는 뽀야가 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환생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빤히 바라볼까. 어떻게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볼까, 도대체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절 긍휼(?) 히 여기는 듯한 표정이 마치 어린 손자를 날마다 걱정하던 할아버지 같다 싶었지요.


이런 건 포메라니안이 똑똑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포메라니안은 지능 순위 상 20위권에 드는 견종입니다. 표정도 다양하고 감정도 표현하는 뽀야는 그래서 정서적인 교감이 매우 강합니다. 가끔 뽀야 털을 잡고 장난을 치면 처음에는 손을 핥다가 나중에는 토라져서 저에게 등을 지고 앉습니다. 뽀야는 거울도 봅니다. 본인의 모습을 세밀히 관찰합니다. 양념과 다투면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발을 뻗어 제 손을 잡아챕니다. '그만해 그만' 분명히!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최근에는 개와 인간의 희미한 경계에 대하여 꼬집는 글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동물도 감정이 있다는 실험 결과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인간과 동물을 나누던 전통적 철학 개념에 혼란이 생깁니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혹은 인격)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정의했습니다. 그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주체, 동물은 대상일 뿐이죠. 인간은 실천적 인격이 있는 주체인 반면 동물은 그 자발적인 주체의 한낱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고 이성이 있다면 동물과 인간은 무엇으로 나눠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먼 나라 얘기일 것 같습니다만, 프랑스에서는 개 여권도 있습니다.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고 몇 가지 절차가 끝나면 발급됩니다. 여권 안에는 등록번호나 이름, 태어난 날짜, 접종내역이 기입됩니다. 물론 사진도 있습니다. 에어 프랑스 홈페이지에는 애완동물 위탁 운송에 대한 안내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주의사항 중 재밌는 것이 있는데 코가 위로 들린 동물, 그러니까 퍼그견, 불도그, 페르시아 고양이 같은 동물도 항공화물로 운송 가능하다는 안내가 인상적입니다. 코가 들린 동물은 비행 중 고온과 스트레스로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대구에서 전국육견인연합회와 대한육견협회 등으로 구성된 '동물보호법 개정 저지 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보신탕 무료시식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약 2,500여 그릇이었다죠. 그 날, 단지 동물보호법 개정에 반대하고 개고기 반대 집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 도살된 강아지가 천여마리입니다. 그보다 끔찍한 것은 그들의 협박입니다. "개빠들이 개고기 반대 집회를 할수록 더 많은 식용견을 죽일 것이다. 다음에는 더 많은 개고기를 준비하겠다"


만약 인간 대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명확한 오류였다면, 동물도 말만 못 할 뿐이지 그리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감정과 이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무자비한 살생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린 홀러코스터라는 무차별한 학살에 절대적인 비난을 합니다. 그건 논쟁의 여지도 없이 악행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말이지 섬뜩한 일입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것이 불과 몇 백 년 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인간과 동물의 정의가 바뀌는 것도 조만간 명백한 오류라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몇 백 년 후에는 동물을 인간으로 대우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뽀야는 꼭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패드에 가서 볼일을 봅니다. 강아지에게 호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강아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도 않습니다. 아예 등을 돌립니다. 어린 강아지를 싫어하고 나이 든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뽀야는 분명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감정이 있어 보입니다. 자 그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전 뽀야가 진짜 개가 맞는 걸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장발 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