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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antmatch Production May 27. 2019

유령

탁상 시계를 닦는다. 오래된 탁상 시계 말이다. 윤을 내는 동시에 생각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난 매일 같이 떡갈나무 의자에 앉아서 그짓만 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난 매일 같이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나 난 이번만큼은 뻑뻑한, 음,,, 그러니까 아니다. 빳빳한, 아니, 빡빡한?, 뭐였더라?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얘기 같다. 박박 머리를 짜내어 이번 무도회에서만큼은 그를 죽이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싸한 이유도 생각해 보려 애썼으나 더이상은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지금에야 말이지만 입주둥이를 헤벌리며 웃는 것은 이제 넌더리가 난다. 그나마 내가 지금껏 이렇게까지 웃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예의 바르게 말이지!' 라며 내내 유난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어머니는 줄곧 내 머리를 쓰다 듬어 주시거나 엉덩이를 토닥거리시거나 두 손을 모아 나에 대한 기도를 하시거나, 뭐, 그런 식이었다. '내 아이는 정말 아름답단 말이야' 생각해보면 나에게 그런 것들이란 정말이지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지.' 난 정말이지 그 말에 침을 뱉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건 어찌보면 침을 어떻게 뱉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인데 가끔은 길거리에서 보았던대로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가래침을 퉤 하고 뱉고 싶었지만 그만 내 회색바지에 뱉고야 말았다. 그 하얀 거품은 마치 예쁜 안개꽃처럼 보였는데 난 그 꽃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꽃을 꺾어 집으로 내달리려고 벤치에서 일어나자 안개꽃은 곧 질리게 내 바지 위에 흘러 내렸던 것이다. 난 소리를 질렀다. '끼아악' 난 나중에서야 이 일에 대해서 진득하게 고심해 본 적이 있는데 어쩌면 저 멀리까지 침을 퉤퉤 뱉어대는 길거리의 남자들을 한번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아마도 그들의 눈을, 흐리멍텅하게, 어떻게 해서든 씨름에서 이기려고 욕심내는, 그래서 더욱 하나의 속성으로 치닫는 발가락만을 봤던 것 같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게 다이다. 어찌됐건 그 유치한 침 얘기는 그만두고, 그 바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면, 그 회색바지는 내 허리에 족히 두배는 된다. 워낙 크다보니 난 그 안에서 간단한 운동을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가끔은 시험삼아 모자를 눌러쓴 숙녀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내 사타구니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고나면 난 키득키득거리며 침을 뱉는 길거리 남자들처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데, '여보시오! 난 당신을 희롱한 것인데'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럴때면 누군가 내 옆구리를 간지럼이라도 태우듯이 몸을 베베 꼬았지만 난 어깨를 반듯이 펴고 잘 참아내려 애썼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멍청한 똥같은 계집!' 어찌됐건 그 회색바지는 여태 내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다. 그때, 그러니까 내 침, 음,,, 안개꽃,,, 아 이 지긋지긋한 침 얘기, 아무튼 그때 내가 이제 막 사타구니에 털이 나기 시작했을 때니까 아마도 25년쯤 됐던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얘기는 빨리 그만둬야 겠다.



   난 내 방에 앉아서 무도회에 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탁상시계를 바라 보았다. 탁상시계는, 나의, 음,,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의 방은 간소하기 그지 없었다는 뜻인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윤이 나는 탁상시계와 차 잎이 침전된 오래된 물 그리고 그 옆에 메달려 있는 밧줄 뿐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 차 잎이 침전된 오래된 물 옆에 있는 천장에 메달린 밧줄이었다. 그뿐이었다. 난 그 밧줄을 붙잡고 턱걸이를 하거나 무릎을 끼고서 거꾸로 메달려 있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나면 바로 물을 마시지 않고 내 몸이 훨훨 타들어가길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가 한번에 차를 들이켰다. 그러면 내 몸의 불길은 꺼지기는커녕 더 활활 타올라 내 몸이 훨씬 더 많은 물을 갈망하게 했다. 대개의 경우 그렇게 몸이 불에 타오르거나 눈알이 빙빙 돌때면 난 방에서 늑대를 보고는 했다. 늑대는 눈을 감고 뜰때마다 나타났다. 그럴때면 내 몸도 같이 돌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그 늑대는 창 밖으로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안에 늑대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하지만 뱅글뱅글 돌다보면 내 방의 벽들은 모두 사라지고 살구색 햇빛 아래 나와 늑대만 서있게 됐다. 난 언젠가 늑대의 목에 금색 종을 메달았다. 째깍째깍 소리가 나도록. 어찌됐건 오래된 기억이 마치 어제 일인냥 떠오르듯 탁상시계는 언제나 다시 나타났다. 이 와중에도 초침은 멈추지 않고 돈다. 돌아서 또 원점으로 오면 다시금 돈다. 처음부터 다시. 난 원점이 되는 곳에 13부터 이어지는 숫자를 촘촘히 적어 넣었다. 끝에 숫자는 아마도 7391이었던 것 같다. 난 촘촘히 적어 넣었다는 것을 다시 밝혀둔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어찌됐건 초침의 주기가 훨씬 늘었다. 난 그때부터 한숨이라도 쉴 수 있을만한 여유를 얻었다. 두번 정도.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초침은 절도가 넘쳤다. 그도 그럴것이 수백개의 톱니바퀴가 정교한 움직임을 선사해줬기 때문이지. 그래 그 때문이다. 그래서 초침은 콧대가 높았다. 째!깍! 째!깍! '이런 빌어먹을 계집 같으니라고.' 시간은 너희 따위를 기다리지 않는 다는듯이 말을 하는군. 군대의 의장단인냥 말이야. 총칼을 마주한 적도 없으면서 절도와 군인의 명예를 말하는 의장단놈들 같으니라고. 어찌됐건 이 탁상시계는 내가 4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가 기억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 기억이 지금 일어나는 것일까? 쉽게 생각하면 좋으련만, 난 시간의 개념이 항상 혼란스럽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것이라면 언젠가 이 묵직한 쇠덩어리가 나의 발위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날 죽이려던 것이 었을까? 날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 늑대였다고 하자. 복잡하니까. 나는 그렇게 모른다고 믿고 있다. 아버지는 죽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찌됐건 이건 누군가를 죽이기도 전에 벌써 지칠 형편이다. 콧물이 흐르고 발이 쑤셨다. 지금은 기억을 뒤적거릴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것만 말하자. 확실했던 것은 아버지는 항상 솔향 냄새를 풍겼다. 깊은 숲 속에서나 맡을 수 있을법한 솔향이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고 사실이다. 그 향내가 풍기면 시계의 초침은 나를 바라 본다. 난 그 시계를 뒤집어 놓았다. 다시 그 시계가 나를 본다. 난 두 손으로 그 시계를 짖눌러 보았다. 다시 그 그 시계가 나를 본다. 난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그게 이 지긋지긋한 시계 얘기의 끝이다. 등 뒤에서 째!깎!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만 빼고. 됐지? 카악 퉤! 내 입 주위에 안개꽃이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이건 누군가를 죽이기도 전에 벌써 지칠 형편이다. 난 이마의 흐르는 땀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아픈 발을 한걸음 뻗어 책을 한 권 집었다. 책을 한 권 집어 몇 문장을 읽고 나니 방안에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분명 라디오는 내 방에 없을텐데.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유롭다고는 생각했다. 시간이 남았으니까. 라디오 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 책 넘기는 소리, 내가 몸을 부비적 대며 하품하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동시에 내 방안에 떠돌아 다녔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아니 단 한번도 집중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내 생각이다. 지금 내 의식,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조그만 칼에만 집중되있다.



  이쯤에서 내가 칼을 어떻게 구하게 됐는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들어서 한번쯤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한 칼을 말하는 것인데, 말을 하지 않으면 당신같은 멍청이들은 상상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며 콧방귀를 뀔 것이 분명하니까, 당신네들에게 기꺼이 밝혀두는 바이다. 나의 이 기록들은 모두 사실이다.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어느날, 난 바닥, 그러니까 공원의 어느 후미진 적막한 곳에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딱정벌레 한마리가 주름진 배를 내밀고 죽어있었는데, 처음에는 개미가 한 두마리쯤 오더니 끝내는 우굴우굴 달려 들었다. 개미들에 뒤섞인 딱정벌레는 마치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난 잠시 그 딱정벌레가 내 입으로 들어올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 보기로 했다. 내가 도망간들 그 딱정벌레가 내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딱정벌레는 곧 사라졌다. 난 내 유일한 친구가 사라진 곳을 찾아 나섰는데 그 곳은 흙바닥 밑으로 구멍이 나있었다. 그래서 난 개미 왕궁을 침략하는 딱정벌레가 되어 그 작은 구멍을 파헤쳤던 것이다. 내 다섯개 손가락 중에 하나로. 지금 생각해 보니 네번째 손가락이었던 것 같다. 어찌됐건 네번째 손가락을 구멍 속으로 천천히 쑤셔 넣었다. 아주 천천히. 아마도 가장 끝에 도달할 때는 알을 까고 있는 여왕개미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손톱 밑 보드라운 살에 뭔가 닿을 때까지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여왕개미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을 당장에 짖이기기로 마음 먹고서 꾹 눌렀던 것이다. 내장이 터지고 그 배때기안에 새끼들도 소리를 지르며 터져나갔겠지라고 생각할 때쯤 나 역시 고통을 느꼈다. 난 분명히 여왕개미를 죽이고 있는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꾹 눌러 보았다. 이것은 여왕개미를 죽이기도 전에 내가 죽을 형편이었다. 나 역시 죽을 맛이었다. 그때 난 손끝에 박혀있는 짧고 날카로운 칼을 보았다. 칼은 떡갈나무에 비해, 사자를 뭉갤만한 바위에 비해, 노아의 홍수를 일으킬 하늘에 비해 여전히 사소했다. 난 그 칼을 집어던지려다가 말고 내 다섯번째 손가락 옆에 달아 보았다. 난 여섯개의 손가락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난 여섯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아니 싫어한다.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오래되고 쓸모가 없어져 버려졌을꺼야. 난 그 칼을 내 품에 품고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내가 칼을 들고 있다는 것쯤은 믿겠지. 그러니까 난 그 칼을 품고서 어느 심상을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 완벽하게 나타났다가도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사그라 들었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시간에 포개어 지듯이. 그것은 마치 창가에 맺힌 입김 같은 것이었다. 난 그것을 붙잡으면 웃을 수 있고 생각도 다시 할 수 있고 침을 뱉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쾌락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었다. 그 심상은 여자의 젖가슴처럼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심상은 아름답다가도 아름답지 않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난 떡갈나무가 가득한 공원의 흙바닥을 건너 핫도그 가게를 건너 호수를 지나 차길 맞은편의 무도회장에 들어섰다. 그 일련의 움직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옷 매무새를 고치고 향내를 풍기고 가면을 챙기고, 소가죽 구두에 발을 구겨 넣고, 벗겨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끈을 동여메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방문을 나서 걷기, 계단을 오르기, 내려오기, 무릎을 굽히기, 정성을 다하여 넘어지지 않기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들은 나에게 매우 천천히 일어났던 것 같다. 이제야 말이지만 난 왼쪽 다리를 절기 때문이다. 하지만 뾰족하고 날렵한 구두를 신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으니까. 어찌됐건 난 이번만큼은 무척이나 재빨랐다. 그러니까 재빠른 표범처럼 가면을 썼다. 아무도 날 보지 못하게. 아무래도, 난 지금의 모습 그대로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 순간, 만약 어머니의 친구라도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마도 지금과 같은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난 다시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분에게 살갑게 웃음을 보이고 어쩔 수 없이 안부를 물으면서 가면을 쓴다 한들 난 입을 헤벌리며 웃게 될 것이다. 군중 속에서도 누군가의 시선은 날 표적 삼아 따라붙어 저 사람이 그 사람이라오 라는 말들이 떠돌아 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비웃고 누군가는 나를 죽이러 오겠지.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머리를 털어버리고 딴생각을 하자. 완벽한 가면이란 파란 보석이 박히고 적색 깃털이 달려 있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난 얼굴에 파란 보석이 박힌 귀족이 되거나 적색 종달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난 굳이 유쾌한 표정을 짖지 않고서도 입만 악!하고 벌리는 것만으로 웃을 수 있게 될 뿐더러, 가끔은 사소한 명령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침묵! 침묵! 영원히!'  내 가면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나의 하얗기만 하고 일그러진 웃음을 한 가면만으로도 난 웃을 필요가 없었다. '내 아이는 참 아름답단 말이지' 그것이면 됐다. 다시 말하면 난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날씨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행여 방귀를 뀐다 하더라도 신경쓸 필요가 없게된 것이, 난 온전히 나로써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반쯤 감긴 넋빠진 눈빛을 하더라도 누구하나 귀찮게 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난 인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 속에 갇혀, 그대로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곳은 어찌됐건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비늘이 벗겨진 생선처럼. 그렇다고만 믿으면 됐다. 난 따질 것도 없이 실행의 적합성만 찾으면 그만이었다. 이 간결함에 난 더욱 현혹됐다. 난 적갈색의 커튼 뒤에 숨기로 했다. 숨을 수 있을만한 커튼은 매우 많았다.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이쪽 커튼에서 저쪽 커튼으로 건너갈 때만 조심한다면 난 완벽한 존재무의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정성을 들여 그 존재무의 상념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난 한바퀴를 다 돌고나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았다. 이러한 상념은 내게 그다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지만, 난 잠시 숨을 돌릴 때마다, 사람들을 오랫동안 쳐다볼 수 있었다. 그것은 보통의 경우에는 불가능했다. 어찌됐건 그 규칙적인 주기를 통하여 난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고 하자. 그렇지 않았다면 못 봤을테니까. 그녀는 창틀 옆에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노랗고 커다란 보름달이었다. 알다시피 내 방에는 달력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달과 해 그리고 지구의 위치가 만들어낸 거대한 주기는 나에게 영원히 흐르는 어느 한 순간일 뿐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시작과 끝이 없는 어느 한 순간의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7391초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지. 난 그곳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내가 늙은 것인지 아직 늙지 않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달력이라도 빌려 오랫동안 계산을 해봐야 했다. 어찌됐건 나는 커튼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것 같았으나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난 사실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냐하면 콧대가 곳고 입술이 다소곳하며 눈빛이 깊다 하더라도 똥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분칠을 했다 뿐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들에게 끌렸는데 그것은 아름답기 때문이었을까? 누가 대답 좀 해다오. 어찌됐건 몇 명의 여자들은 날 끌어들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름답다는 기준이란 것은 순전히 나 자신에 의해서이기 때문에 난 나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아름답다고 할까? 그렇지 않다면 그저 똥냄새나 풍긴다고 생각할까? 반면에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난 나를 믿을 수 있을까? 바위만큼이나 꿈쩍하지 않는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난 나를 죽여야겠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 어찌됐건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사랑에 빠진 것도 같았다. 왼발이 쑤셨기 때문인데 난 긴장하면 그런 식의 통증을 느끼곤 했다. 조금 절었던 것도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다. 어차피 바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난 그녀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녀의 뒷덜미에서는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오렌지꽃이라 믿는다. 난 눈을 감고 그윽한 향내를 맡아 보았다. 향내가 좋았던 것인지 그녀가 좋았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빙글빙글 도는 원인과 결과같은 것이었다. 왠만한 것은 모두 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인에 관한 책을 모두 읽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어린 소년이 자신의 보드라운 엉덩이 사이에 관심을 갖 듯, 은밀함을 드러내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세상에 출현 시키는, 혼줄이 날 것이 예상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난 이러한 행위를 미화할 생각은 추어도 없다.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하자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그녀와 담소를 나누던 사내를 발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건 누군가를 죽이기도 전에 지칠 형편이다. 난 그를 단칼에 죽일 수도 있었으나 등을 돌렸다는 것을 말해둔다. 그것이 중요하니까. '이게 누군가! 분명히 자네였군' 그녀와 담소를 나누던 그가 말했다. 난 그를 알 것 같았다. 가면에 뚫린 구멍 사이로 고르고 하얀 치아와 날름대는 혀가 보였기 때문이었는데, 난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난 상대방과, 그러니까 그렇게 자주 하는 편도 아니지만, 만약 대화라는 것을 나눈다면 언제나 그의 주둥이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주둥이는 항상 나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신체기관 중 하나였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아주 자주, 그러니까 대부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나오거나 트림 따위가 나왔다. 난 아주 간혹, 예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기다리며, 움찔거리는, 상대방의 주둥이 말이다, 그 말을 하지 못해 안달이나 똥꼬처럼 입을 오무리는 상대방에게 '그만!' 하고 말문을 막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됐건 그가 웃었으므로 나도 웃었다. 그리고서 몇 초 아니 몇 분이 지났다치자, 난 이제 지쳤으니까. 그는 내 집의 가장과 안주인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난 둘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죽지 않은 것 같기도 했지만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세련되고 적절한 말투로 조의를 표하고서 나의 오른쪽 어깨를 툭 후려 갈겼는데, 위로의 표현이었는지, 남자다움의 과시였는지, 나는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다 오른발로 왼발을 짖밟고 말았다. 난 고통이 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처럼 한쪽 다리를 들고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를 위해 몇가지 얘기 하자면, 그는 늘 고통과 함께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바늘도구를 들고 입을 헤벌린 환자의 환부를 찔러대며 뼈를 뚫어 말초신경을 드러내고서는 침을 흘리며, 마치 쇠고기 요리라도 되는 듯이 긁고 썰고 자르고 뽑고 부수고 깨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한번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자! 인사하게'라고 말했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가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나서 또 몇 초 아니 몇 분이 지났던 것 같다. 난 내 유일한 시계인 탁상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좀처럼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확히는 말해 줄 수 없지만, 말하자면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손뜨개질로 팔 한짝만큼 짤 수 있는 시간이 지난 다음, 난 안녕하십니까 부인이란 말을 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난 그녀의 풍만한 젖무덤도 바라 보았다. 이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난 이 대화가 즐거웠기 때문에 이 순간을 더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짓은 좀처럼 하지 않았지만 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라고 말을 시작했으나 아쉽게도 '그만!' 하고 그가 막아섰던 것이다. 그래서 난 그만 두었다. 그만 하자. 어찌됐건 난 그다지 말다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상념들을 방해한 그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행동들은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 나의 관심은 온통 한마리의 파리에 집중됐다. 파리는 윙윙 대며 내 눈알에, 내 콧구멍 속에, 내 입 속으로 들락거렸다. 난 내 몇 개 없는 이로 아주 그놈의 눈알이 박살이 나도록 씹어줄 수 있었지만 그 파리를 한번만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양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파리를 잡으려 했는데, 이 행동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 뜻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이상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말을 들으며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난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난 이 상태에서는 도저히 그녀의 주둥이를 바라볼 수 없겠다 싶어 '뒤로 돌아!' 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여전했다. 난 그래서 바지 주머니 속으로 사타구니를 만지작 거렸다. '날 후려쳐 보라지'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더 심하게 그녀의 엉덩이와 그 사이를 문질렀다. 그러자 오히려 그녀는 더욱 교태를 부리며, 아예 신음 소리를 내며 그에게 안기는 것이다. 난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이래도 날 모른체 하겠니' 난 안춤에 있는 칼의 손잡이를 주물럭 거렸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난 그녀의 몸통 어딘가에 칼을 꽂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 앞의 그녀 앞에 있는 그가 나를 바라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난 여전히 칼의 손잡이만 주물럭 거리고 있었다. '안춤의 그것은 무엇인가' 그가 물었다. 모두가 나를 보았다. 그녀가 꿈에서 깨어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이. '안춤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선물이라면 나에게 주오!' 그가 다시 물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줄행랑을 쳤다. 여러번 자빠졌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나의 퇴장하는 순간은 매우 유쾌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 자빠졌다.


 

   나의 하얀 가면에는 여자를 농락한 범죄자의 표식이 심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초침 모양이 아닐까.  난 생각했다. 난 이제 가면 안에서조차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만큼 끔찍했다. 난 그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벗어 보았으나 여전히 일그러진 웃음만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어딘가 범죄자의 표식이 숨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난 평생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해본 적이 없다. 난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 물건을 으깨버리려 했으나 다시 품 안에 넣고 말았다.  그러자 가슴이 꽤나 부풀어 올랐다. 마치 길거리의 우둔한 창녀처럼.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오래된 꿈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되보는 것! 그러면 나는 길거리의 남자들처럼 침을 뱉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몇 초 아니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나의 이러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구두굽 소리가 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부터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 같으니라고, 바로 그였다고 난 믿고 있다. 나는 칼을 쥐고서 다가올 시련을 생각해 봤다. 내 코가 터지고 피가 흐르고 이가 부러지는 상상 말이다. 그러면 다시 그가 부러진 이를 치료해줄까. 어찌됐건 아무리 징그러운 벌레라 할지라도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이것이 언제 튀어 나올지 몰라, 기겁을 하게 되지만, 혹시라도 나와 그것!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 혹은 늙은 할망구라도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난 빨간색 몸통을 가진 벌레를 특히나 싫어했는데,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보자마자 입으로 씹어버릴만큼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것!이 내 눈앞에 있다면 난 내 눈알을 유리에 붙이고 그것!의 다리 아니면 온갖 구멍을 찾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란 말을 네번이나 하면서까지 이 말을 하는 것은 난 내 부풀어진 가슴이 그런 식의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분명 여자란 존재는 남자란 것을 꼬드기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그가 내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난 길거리의 창녀처럼 '나의 꽃을 피워주세요'라며 그를 유혹했으나 그는 어느새 내 등 뒤로 사라졌다. 솔향 냄새를 풍기면서. 이건 정말이지 참을 수 없다. 난 그를 뒤쫓았다. 아니 그가 나를 뒤쫓았다. 아니 내가 그를 뒤쫓았다. 아니 그가 나를 뒤쫓았다. 아니 내가 그를 뒤쫓았다고 치자. 난 이제 지쳤으니까. 이런 경우에는 쫓았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난 별 성과없이 벤치에 여태 앉아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제 모든 것은 심연 속으로, 깊고 어두운 다락방과 같은 곳으로 아니면 저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빛을 잃고, 침묵을 지키고, 겹겹히 쌓이고, 어쩌면 주기에 맞춰 돌아가는 궤도에 진입하여 일단락 되는 듯 하였으나, 내 옆에 어떤 남자가 앉았던 것이다. 난 그 남자가 날 쫒던, 아니 내가 쫒던, 아니 날 쫒던, 아니 내가 쫒던, 이제 무슨 말로 끝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녀석이였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실히 솔향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이제 곧 이 이야기도 끝장이 날 것 같다. 난 그를 당장에 죽이고서, 아직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내 방에 있다고 말했던 밧줄에 메달려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잠시 그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이것은 나도 의아해 했던, 살인자들의 충동이었는데, 내가 읽은 모든 책에서도 살인자들은 그의 피살인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 나도 대화를 해보자! 그래서, 좀처럼 그러지 않지만, 난 그의 등짝을 한번 후려쳤다. 어쩌면 멍청한 당신들은 주먹다짐을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것이 그랬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자네는 거칠어 진겐가 거칠었던 겐가'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난 달리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어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난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자네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 같군' 내가 말했다. '그렇다네. 한 파렴치한 인간, 절름발이! 냄새나는 늙은 노인!' 그가 말했다. '그에게 족쇄를 체울텐가? 금색 종이라도?' 내가 물었다. '그를 교육 시키고 혼내키고 손으로 밥을 먹이다 쇄놰시킬 작정!'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일 작정이군 하고 내가 말했다. '뭐라고?' 그가 귀를 가까이대며 물었다. 아마도 귀가 안좋은 모양이었다. 난 이 듣지도 못하는 불구에게 '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네' 라고 말했다. '뭐라고?' 그가 말했다. '난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네. 왜냐하면 난 유령이기 때문이지' 내가 말했다. '뭐라고?' 그가 말했다. '자네를 이 칼로 쑤셔 죽일 것!'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왜인가' 그가 물었다. '왜라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쓸모없는 질문!' 내가 말했다. '그건 왜인가' 그가 물었다.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난 대신 '자네가 부럽군' 이라고 말했다. 그가 또 왜인지를 물을 것 같아 나는 그의 주둥이를 흙으로 메워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자네는 절도가 있기에' 라며 먼저 얼버무렸다. 그가 또 왜라는 말을 한다면 난 이 칼로 그의 심장에 구멍을 낼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뭐라고?' 그가 귀를 가까이대며 물었다. '자네는 여인을 사랑할 줄 알기에' 내가 대답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몇 초 아니면 몇 분이 지났을 것이다. 나는 그의 질문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래침을 퉤하고 뱉었다. 난 평생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할 수 없어요!' 나는 말했다. 공원에는 떡갈나무가 무수히 많은 기둥처럼 깊은 곳까지 솟아 있었다. 그 기둥 뒤에는 숨바꼭질을 하듯이  해가림 모자를 쓴 여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꺄르륵하는 웃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난 그의 질문이 그리웠지만 숲 속으로 달려갔다.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그 여인은 큰 나무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가도 다시 웃으며 나를 바라 보았다. 꺄르륵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난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그러니까 지극히 정상적으로, 난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나의 어머니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모자를 가로챘다. 그리고 챙이 큰 모자를 눌러써 보았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오래된 꿈이었다.  '난 아름다운 남자라네' 나는 노래 불렀다. 하지만 그가 내 뺨을 후려 갈겼다. 난 웃어 보았다. 그는 나의 얼굴을 철썩 때렸다. 그래서 난 울었다. 난 어떻게든 웃어보려 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에게서 나는 솔향 냄새가 지긋지긋했다. 그는 대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여전히 울기만 했다. 이제 이 오래된 얘기의 끝을 맺자. 난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칼날의 감촉을 느껴보았다. 매섭고 차가운 느낌이 언제나처럼 나를 몰아쳤다. 눈이 빙빙 돌았다. 나의 몸이 활활 타올랐다. 난 내 방안에 있는 물이 그리워졌다. 갈증이 났다. 난 칼을 안춤에서 꺼내 그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나를 간지럽혔다. 난 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풉하는 소리는 넘어가야 한다는 것! 그는 나의 칼을 뺏는 대신 창녀의 옷이라도 벗기듯 나의 구두를 벗겼다. '이 절름발이! 냄새나는 늙은이! 니 발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 ' 그가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내 의도가 아니었네! 이 쓸모없는 여섯개의 발가락! 냄새나지 않는다는 것! 나에대한 미움, 감시! 맞지않는 가죽신발에 내 발을 쑤셔넣었다는 것!'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볼 수 없었다.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질문이 그리워졌다. 이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그리고 그 말에 침을 뱉고 싶었다. 난 칼날을 공중에 휘휘 저어보았다.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의 안쪽다리를 찔렀다. 보이지 않는 고통은 무엇보다 명확했다. 존재, 확실한 고통의 존재. 존재 위에 고통이 있는지 고통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돈다. 원점으로 오면 다시 돈다. 난 내 안에 박혀 있던 것들을 빼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째깍째깍 거리는 초침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죽어버린 것인지 내가 죽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 앞이 빙빙 돌았다. 그러자 살구색 햇빛아래 나와 늑대만이 존재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내 방에 있는 밧줄에는 오래전부터 한 남자가 메달려 있다. 그의 왼발은 파랗게 썩어 있다. 그는 나인 것 같으면서도  그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 같기도 했다. 종소리가 울리며 늑대는 밧줄에 매달린 존재를 핥다가도 물어 뜯는다. 뜯어먹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밧줄도, 탁상시계도, 늑대 목에 감긴 금색 종도 필요하지 않다. 눈 앞이 빙빙 돌았다. 명백한 것은 고통이었다. 이제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곧게 뻗어 있는 초침을 바라보았다. 탁상시계는 더이상 돌지 않았다.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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