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글 밖에 남은 것이 없다. 부조리에 굳은 표정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굳는다는 것은 참담하다. 그건 분노도 슬픔도 아니다. 바람이나 태양과 같이 당연시될 때의 일이다. 부조리는 일상이다. 난 그럴 때 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쓴다. 단어를 적어 내려간다. 간다. 난 내가 쓴 활자를 밟아가며 간신히 내 은신처에 도달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에서 죽음에 대한 선택을 종용한다. 죽음을 선택하거나 혹은 우린 이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 죽음 반대편의 선택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하지만 죽거나 혹은 그 일을 감내하는 경계선은 그렇게 비대칭적이면서도 지극히 명백한 현실의 모습이다. 우린 기울어진 보트에서 죽지 않고 살아낸다. 생명은 그렇게 죽으라는 것들 사이에 피어난다. 왜. 세상은 왜 이 아름다운 것들에 반대하는가. 죽지 않는 것들에게 말한다. 죽어라! 죽으란 말이다.
2020년 3월 10일엔 비가 내렸다. 미세먼지와 바이러스에 종종걸음 치는 인간에게 하늘은 비를 내렸다. 비가 온다. 내 어깨 위에, 사람들의 구두 위에, 소중히 든 가방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