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집엔 블루종이 많았어. 그걸 블루종이라고 부르는 건 몇 년 전쯤에야 알았지. 그 오래된 옷엔 어떤 냄새가 나곤 했는데 장롱 냄새였어.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 그건 오랜 세월의 냄새였어. 내가 닿지 못할 시간의 겹. 난 장롱문을 열고 소외된 그 시간의 흔적을 보곤 했어. 사진기, 싸구려 철제 금고, 오래된 가방, 잘 다려진 정장, 도장이 찍힌 서류들. 그 사물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 물건들을 지켜봤어.
/
20대의 난 울렁이던 파도. 구토와 같은 현기증. 우웩. 눈앞이 캄캄했다. “할머니, 다리 괜찮아?” 겨울. 하얀 눈. “넘어져!” 그때 난 울렁이던 파도를 연주했다. “야 너 한번 해봐” 메스꺼워. 시골에서의 밤. 바닥을 드르륵 긁는 지팡이 소리. 쿵. 난 그날 밤 할머니의 황망한 눈빛을 기억한다.
/
짜장면을 먹고 담배를 한대 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줌마에게서 수박향이 났다. 달콤하고 여름철 냇가 같은 향이다. 저 집 아이는 엄마 향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잠시 생각했다. 난 엄마의 자외선 차단제 향을 기억한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낮잠을 자던 엄마가 생각난다. 집 냄새. 엄마 손에 풍기던 생선 냄새. 아파트 복도에서의 김치찌개 냄새. 외갓집에서 맡았던 오래된 가구 냄새. 그 기억들이 물감처럼 내 속에 섞여있다. 그나저나 내가 왜 짜장면을 먹었을까. 토할 것 같다.
/
복도에선 시골 잔칫집 냄새가 났다. 맥주와 수육 그리고 말린 오징어와 홍어 냄새 같은. 취한 아저씨들이 있고 술병과 일회용 접시가 즐비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 기억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각인되던 순간 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난 이 냄새를 단서로 떠오르는 그 풍경이 싫으면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