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G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ephantmatch Production Mar 18. 2020

기억

/

시골집엔 블루종이 많았어. 그걸 블루종이라고 부르는 건 몇 년 전쯤에야 알았지.  오래된 옷엔 어떤 냄새가 나곤 했는데 장롱 냄새였어.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 그건 오랜 세월의 냄새였어. 내가 닿지 못할 시간의 .  장롱문을 열고 소외된  시간의 흔적을 보곤 했어. 사진기, 싸구려 철제 금고, 오래된 가방,  다려진 정장, 도장이 찍힌 서류들.  사물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물건들을 지켜봤어.


/

20대의  울렁이던 파도. 구토와 같은 현기증. 우웩. 눈앞이 캄캄했다. “할머니, 다리 괜찮아?” 겨울. 하얀 . “넘어져!” 그때  울렁이던 파도를 연주했다. “  한번 해봐메스꺼워. 시골에서의 . 바닥을 드르륵 긁는 지팡이 소리. .  그날  할머니의 황망한 눈빛을 기억한다.


/

짜장면을 먹고 담배를 한대 폈다. 엘리베이터에  아줌마에게서 수박향이 났다. 달콤하고 여름철 냇가 같은 향이다.   아이는 엄마 향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잠시 생각했다.  엄마의 자외선 차단제 향을 기억한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낮잠을 자던 엄마가 생각난다. 집 냄새. 엄마 손에 풍기던 생선 냄새. 아파트 복도에서의 김치찌개 냄새. 외갓집에서 맡았던 오래된 가구 냄새.  기억들이 물감처럼  속에 섞여있다. 그나저나 내가  짜장면을 먹었을까. 토할  같다.


/

복도에선 시골 잔칫집 냄새가 났다. 맥주와 수육 그리고 말린 오징어와 홍어 냄새 같은. 취한 아저씨들이 있고 술병과 일회용 접시가 즐비한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이,  무의식 어딘가에 각인되던 순간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냄새를 단서로 떠오르는  풍경이 싫으면서도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나의 피카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