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G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ephantmatch Production Mar 18. 2020

시간

/

기다리지 않으면 시간은 빨리 간다. 반대로 기다리면 시간은 더디고 더디다. 기다리는 시간은 초침과 같다. 1. 2. 3. 4.   이상으로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바닥부터 하나씩 쌓듯. 하나 그리고 . , . 쌓아간다.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모두에게 똑같다.


/

빨래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체취. 어제 먹었던 음식과 부대끼던 사람들의 냄새들. 물에 담가 문지르면  체취는 사라진다. 과거로 되돌린다. 리셋. 하지만 아주 처음, 그때로 돌아갈  없다. 엉켜버린 시간 어딘가로. 빨래는 시간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다.


/

주차장은 어두웠다. 깜빡이를 켜자 주변의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에 잠겨있던 차들, 4298, 8125, 5231번이 웅크린 표범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마주한 헤드램프.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을 소방 배관.  공간의 분위기. 그곳엔 나만 모르는 어떤 규칙이 있는 거 같았다.


/

손 틈 사이로 흐르는 모래처럼 시간을 쥐고 있다.  생각은 종종 시간이란 주제에서 맴돌고 나라는 건 언제든지  속에서 소멸한다. 누군가  유한성 때문에 삶이 아름답다 했다.  시간에 대범한 편이지만 때론 이렇게 구차하다.


/

이번 겨울은 유독 치열했다. 창밖에 걸어뒀던 송악 나무 덩굴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3월이 되고 나서야 햇살은 봄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피곤했던 가지 위에 노랗고 밝은 빛을 쏟아냈다. 앙상하고 홀쭉하게 마른 가지가 뒤늦게 친절해진 바람에 흩날린다.  휴식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안도감이 스며든다. 상실의 기억과 함께  한 번의 봄을 맞이한다.


/

동상의 시간은 멈춰 있다. 제각각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순간 이후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동상의 위세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침묵이  경이롭다. 얼핏 죽음이 연상된다. 침묵은 어쩌면 죽음의 메타포인  같다. 그래서  동상을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북한남에 가면 어느 빌딩 앞을 가득 메운 동상이 있다. 사자는 나무속에 숨어 있고 개구리는 사자 옆에 앉아있다. 기린은 고개를 쳐들고 나뭇잎을 먹으려 한다. 그들의 습성은 굳어진  속에 갇혀있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허락되지 않는다. 조각가는 생명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시간을 뺏어버렸다. 신의 장난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