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가면 촌구석 칼국수란 가게가 있다. 오후 3시면 닫아버리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그 인근에는 부자 피자, 파르크, 나리식당처럼 소위 힙한 가게가 즐비한데 북적거리는 인파와 발렛파킹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 촌칼국수는 허름하게 자리한다.
난 밀가루 면이 아니라 갖가지 재료를 섞어 면발이 굵고 끊어지는 면을 좋아한다. 그런 면발은 전분이 많아서 국물이 걸죽하고 마시면 배가 무겁다. 난 위장이 약한 편이라 그렇게 무겁게 먹으면 금새 탈이 나는데 그럴 때마다 사정에 맞지 않게 예민한 장이 원망스럽다. 내 배는 나의 자금 사정에 비해 너무 철 없이 까다롭다. 난 뭐든 수더분하게 소화시키는 위와 장을 가지고 싶다. 라면이나 먹고 막걸리에 취해도 다음날 건강하게 꼬로록 대는 소화기관이 있다면 반드시 살 것이다.
칼국수 1인분을 시키면 대접같은 플라스틱 접시에 바지락, 호박, 감자, 쪽파, 수제비가 가미 된 식사가 나온다. 칼국수의 색은 어딜가든 반투명한 하얀색인데 그 면발과 국물의 색깔만 봐도 겉절이, 깍두기가 빠질 수 없단걸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안다. 거기에 다대기와 공기 밥 한그릇이 나오는데 어떻게 먹으란 말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아마 외국인들은 도대체 어떤 순서로 어떻게 먹어야할지 모를 것이다.
한번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외국인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국물을 스프처럼 다 떠마시고 반찬을 하나씩 하나씩 먹은 다음에 밥 한공기를 맨밥으로 먹었다. 우리 나라 음식만큼 식사 방법이 생소한 것도 없다. 한국의 상차림은 개인의 것과 공통의 것의 경계가 흐릿하다. 밥그릇 하나만이 내 것이고 찬은 모두의 것이다. 각자의 접시에 덜어 먹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상이 동시에 모두의 것이다. 찬은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개인데 생선, 나물, 김치, 탕, 국물 모두가 동등한 지위이기 때문에 오늘은 굴을 먹었다 오늘은 고기를 먹었다와 같은 서구적인 표현보다는 그냥 밥을 먹었다가 어울린다. 기호에 따라 찬을 섞어 먹는대로 같은 상에서 개인의 식사가 된다. 그게 우리의 백반이다. (어쨌든 칼국수는 다른 얘기지만…)
난 개인적으로 칼국수에 다대기를 섞지 않는다. 칼국수는 심심하고 두툼한 면을 한입 크게 집어 후루룩 삼키고 김치와 함께 먹어야 한다. 이어서 국물을 한번 들이키고 한 젓가락의 끝으로 바지락을 몇 개 먹는다. 흰 쌀밥은 기호에 따라 다른데 면발을 다 먹고 국에 말아 먹어도 좋지만 두번째 면발을 집어 들기 전에 한 숟가락 먹으면 입에 남은 맛이 밍밍하게 사라져서 다음 집어드는 면발의 맛이 더 좋아진다. 이 반복이 지겨워질 때면 감자와 호박을 떠먹는데 칼국수 한 그릇에도 이렇게 다양한 맛의 조합이 있다.
칼국수를 좋아하는 난 항상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 버리곤 한다. 그러고 나면 매번 칼국수 한 그릇 가격으로 7,000원이 적당할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양을 줄이고 가격을 5,000원으로 한다면 나같이 예민한 위장에 부담되지 않을 만큼 먹고 돈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이어트에 민감한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이 먹을까? 그런데 인근 고급 파스타 가게에서는 한 주먹도 안되는 파스타를 몇 만원에 팔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금세 접는 편이 낫다. 어쩌면 가격을 유지하고 양을 줄인다 해도 전혀 무관할 것이다. 그런데 칼국수가 대접만한 그릇이 아니라 파스타 그릇에 새침하게 나온다면 난 서운할 것 같다. 돈이 아니라 그 정서 때문에.
이 곳 사장님의 말을 들어보니 본인은 어렸을 때 칼국수가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칼국수로 돈 벌고 살 줄 몰랐다며 웃는다. 어쨌든 난 이 칼국수를 먹으며 이런 글을 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