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니, 서울이 너무 낯설다.

by bien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긴 했지만 나는 유독 우리나라의 정서, 음식, 제품,

아기자기한 지역들 그리고 한국어로만 할 수 있는 농담들까지 정말 사랑한다.


물론 중간 중간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도 해보고 여행도 다니고,

다른 세상이 있음도 알고 더 좋은 부분이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보자 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유년기, 학창 시절은 스킵하고 내가 진정한 성인이 된 이후부터 되돌아 본다.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결혼을 시작으로 화목한 양가 어른, 좋은 친구들이 늘 함께 했고

말하면 다들 알 법한 회사에서 나름 좋은 커리어를 쌓으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겨 아기와 함께 하게 되니,

한국은 나에게 그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첫번째, 서울에서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손에 꼽힌다.

임신 후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 "이제 출산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시고 거기로 다니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야 모든 산부인과에서 출산이 가능한게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살던 용산구에서 '출산이 가능한' 병원을 검색했더니 없었고, 옆의 마포구/중구에도 없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홍대 근처에 한 군데가 있었으나 거리상 그리고 강 건너 동작구의 병원(산후조리원과 함께 운영하는)과 비교했을 때 내겐 메리트가 없었다. 또한 대학병원이라는 옵션도 있긴 했지만, 선택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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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매주 정기 검진을 위해 강을 건너갔다오며 임신기와 출산을 잘 마쳤다.

내가 다니던 병원 또한 저출산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서 앞으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두번째, 일반적인 서울의 동네 환경은 친절하지 않으며 국가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서울의 동네들은 오르막길, 좁은 도보길 그리고 배달 오토바이의 천국이라 갓난 아기 그리고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에게 상당히 불친절했다. 차를 이용해 공원이나 어떠한 장소에 간다면 모를까.... 그리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지원 정책은 실질적으로 서울의 평균 소득을 가진 부부는 대부분이 제외되며, 그나마 받을 수 있는 것도 일회성의 현금 지원에 그쳐 국가를 든든한 존재로 믿고 육아를 시작하리라 하는 마음은 절대 들지 않을 것 같다.


세번째, '육아 + 커리어의 병행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끝없는 고민을 준다.

임신기간부터 워킹맘이 겪는 고충과 그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케이스들을 많이 봐왔고,

나 또한 두가지 모두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해보았다.

다행히도 친정 엄마가 같은 동네에 있던터라 도움을 받았고 9개월부터는 어린이집으로 아이의 첫 사회생활을 스타트해보리라는 계획이었다. 요즘은 '다들 만 1세가 되기 이전에 많이들 보육시설에 가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애써 위로 삼으며 입소 승인을 받은 어린이집 첫 방문만 손에 꼽고 있었다.


가을의 어느 하루였던 그 날, 입학 원서를 내러갔다. 아침부터 비가 왔고, 재택 근무를 하던 중 점심시간이 되어 우산을 쓰고 서류를 가지고 갔었다. 문을 열어주신 문은 1세반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만삭의 임산부셔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우리 아기가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 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저도 첫 애라, 저희 아기라고 생각하면 못 보낼 것 같아요."라고 웃으시는게 아닌가. 물론 나의 걱정에 맞장구 쳐주시느라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담임 선생님이 내 걱정에 동의를 해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처음 나설때보다 더 회색빛이 진해진 것 같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어깨는 한껏 무거웠고 웃고 있는 아기 얼굴에 더 아른거렸다.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등 나와 아이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은 어쩜 저렇게도 멀어 보이는지....요즘 뉴스에는 왜 그렇게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많은지...알면 알수록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대부분 집에서 재택을 했는데 물 마시는 것도 참고 숨만 쉬고 일을 하는데 거짓말처럼 일은 끝이 나질 않았다. 내 직무상 특징일 수도 있겠으나, 눈뜨자마자 밀린 슬랙/노션/지라의 알림들을 확인하고 답변하고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아 줄줄이 잡혀 있는 회의들을 해치우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위해 기획서를 쓰고 리뷰하고 개발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릴리즈를 위해 수백개의 케이스들을 테스트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마무리된 프로젝트들 회고하고 회의 자료 만들고 유관부서에 공유하고....그야말로 하루종일 미친 사람처럼 일만 하는 삶이 지속되었다. 엄마가 집에 가시고 나면 아기를 안고 갑작스레 잡힌 회의를 하기도 하고, 밀린 집안일을 뛰어다니면서 하고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후다닥 밥을 해서 먹고 아기 목욕시키고 그렇게 남편과 나는 각자 또 자리에 앉아 야근을 이어가다 '먼저 잘게, 고생해'하며 번갈아 방에 들어갔다.


평일 동안에 남편과 나는 회사의 누군가로 살아갔고 주말이 되어서야 우리가 되어 온전히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얼굴을 마주보고 손을 잡고 같이 산책을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갔고 아기가 크는 모습에 행복함도 크게 느꼈지만 '온전히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생각할 시간과 겨를도 없었고 그렇지 않다는 나도 모르게 확신했던 느낌에 계속 묵혀두게 되었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앞으로를 마냥 즐겁게 꿈꿀 수는 없는, 이렇게 그냥 바쁘게 흘러가는 속에 나도, 우리도 같이 흘러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은 계속 커져갔다.


정신없이 5일을 보내야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던 우리는 어느새 주말만 되면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시그널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항상 서울에 사는 걸 좋아했었는데 어느샌가 서울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하는 것들을 많이 얘기하게 되었다. 더이상 싱글/신혼부부가 아니게 된 우리에게 서울은 더 이상 그 어떠한 메리트도 가지지 못 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빠른 속도로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와버렸다. 물론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기반이 있었던 덕분에 수월하게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부모가 된 후 서울이 우리에게 던져준 고민들과 고생 덕분에 뉴 챕터를 열어나갈 수 있어서 속 시원하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불편함과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기겠지만 하루하루 알차게 이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