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起

다시 공부하는 이유

by 아토

※ 2016년 1월, 인턴 과정을 마무리할 즈음에 작성한 글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가슴 한 구석에서 안타까움이 배어든 슬픔이 올라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쳤다. 이 책은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몹시 따르고 좋아했던 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이오덕의 <우리말 바로 쓰기>와 함께 평생 곁에 두고 가슴으로 조금씩 읽어나가라며 주셨던 책이다. 국문학과 출신이신 선생님 덕분에 시를 가슴으로 읽는 법을 배웠고, 작가들이 얼마나 멋진 존재들 인지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조건을 쓴 앙드레 말로 말이야. 글도 글이지만 젊은 시절의 모습이 너무 멋지지 않니?"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미숙한 중학생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앙드레 말로의 책을 덜컥 사버렸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멋을 부리며 하이힐까지 신고 선생님을 찾아가니, "아토야. 데이트를 할 때는 꼭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나가렴. 운동화를 신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바란다. 그리고 만날 때는 늘 네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라 하셨다. 선생님의 이 말씀은, 이후 남자친구를 선택하는 내 기준이 되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다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누구보다 학창 시절의 저에 대해 잘 아는 분이니 선생님께서 제 추천서를 써주셨으면 해요." 다들 모 대학의 유명 교수, 큰 단체의 지도자를 찾아가 추천서를 받았지만 선생님의 추천서가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부탁드린 추천서를 받으러 며칠 뒤, 선생님이 계신 중학교 교문 앞을 찾아갔다. 정성스레 쓰셨을 게 분명한, 두툼한 추천서 봉투를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 나오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결국 그 추천서를 냈던 학교는 떨어졌지만, 이후 재도전하여 다른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험난한 본과 생활을 보낸 후 국시에 붙어 의사가 되었고, 이제 더 험난했던 인턴 생활도 6주 정도 남긴 채 막바지에 서있다. 지금은 전공의가 모자란 지방병원의 정형외과에 파견되어 밤낮없이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하루에 3시간가량 자는 것 같다.


밤에 병동당직을 서다 보면, 다음날 있을 수술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환자부터 호흡곤란으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중환자들까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의사다워진 모습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어제는 큰 수술 후 갑자기 열이 나며 컨디션이 나빠지는 환자가 생겼다. 그래서 한밤중에 각종 검사를 나가고 끝없이 검사 결과창의 새로고침을 누르며, 한 시간에 한 번씩 환자를 찾아갔다. 잠은 잘 주무시는지, 많이 편찮으신 건 아닌지 체크하느라 분주한 밤을 보냈다. 비록 환자는 내가 밤마다 들러 잠든 얼굴을 살핀 걸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과에 입원한 환자들을 한 분씩 찾아뵈며 간밤에 괜찮았는지 주치의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셀프 회진을 돌았는데 그게 참 좋았다.


환자를 대면진료하지 않는 과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하면 다들 내게 한 마디씩 한다. "환자 보기가 그렇게 싫었니?" 혹은 "그래. 삶의 질도 참 중요하지." 라며 나의 마음을 넘겨짚는 듯한 평을 한다. 상대의 그런 반응에 내가 겸연쩍어하면서 "환자 보는 건 많이 좋아해요. 다만 보기보다 제 몸이 너무 약해서 임상의사를 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환자를 보기 싫어 도망치는 모든 의사들이 아마 그런 식으로 둘러댈 거라는 표정으로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래서 이제는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좋은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라고 하고 만다. 내가 택하려는 이 전공은 주야장천 앉아서 연구만 하는 전공이라고 생각들을 하기에, 그 대답에는 그제야 수긍을 하는 듯하다.



나는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아파하는 환자의 옆에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임상의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귀엽기도 하지만, 본과 시절 "한 시간 더 공부하면 환자 한 명 더 살린다."는 메모를 책상 앞에 써서 붙여놓고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다. 한 시간 공부하는 걸로 한 명 더 살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환자를 살리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실습을 시작하며 생각보다 훨씬 더 악조건이었던 내 육체 탓에 대면진료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 혹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금치산자가 된 심정으로 쓸쓸하고 참담하게 삼 년을 보냈다.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으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데 어언 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신영복 선생님의 짧은 한 문장 덕에 여러 굽이굽이 지나, 저 깊이 묻어두고 외면했던 내 마음을 꺼내보고 있다. 사실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한 시간 더 공부해서 한 명 더 살리고 싶다는, 많은 이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도저히 내려놓지는 못하겠다.


저마다 세상을 향해 투쟁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조건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할 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진 도구를 넘어선 진심 아닐까.

그 누가 감히 내가 가진 펜을 누군가의 메스보다 못하다고 평할 수 있을까.


엽서에 빼곡히 적은 글로 끝없이 저항했던 신영복 선생님처럼,

나는 다시 열심히 공부하겠다.

그래서 정말 좋은 의사가 되련다.


https://m.youtube.com/watch?v=FwKgAQzAT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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