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데워주는 마음

글쓰기를 시작하며

by 아토

공개적인 장소에서 글을 내보인지 얼마 안 되었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일순간바뀌는 느낌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내 일기글을 누가 읽어주려나 하는 소심함과 함께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글쓰기를 미루겠다는 게으름, 혹은 그를 표방한 두려움 탓에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한 뒤에도 한동안은 서랍 안에 잠재워져 있는 글을 발행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오체투지를 이어나가는 마음으로 일단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해 보자는 결심을 하였고, 그 마음이 결국 이 새벽에 일어나서 키보드를 두드리게끔 나를 일으켜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눈이 펄펄 휘날리는 겨울의 풍경을 글로 담아 일기를 썼었고, 눈 내리는 모습을 천사들의 방문으로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들어 명절 때 할아버지 댁에 가져가서 여러 친척들 앞에서 일기를 읽어드렸던 기억이 내 최초의 글쓰기이다. 학창 시절, 숙제로 자주 나왔던 독후감을 착실하게 작성하고 국어 선생님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큰 기쁨 중 하나였던 기억도 난다. 수학이나 영어 노트는 쉽게 버리면서도 국어노트만큼은 버리기가 아쉬워서 두고두고 쌓아두었다가 한 번씩 펼쳐보곤 했었다.


그게 그렇게 특별하다거나 나를 규정짓는 어릴 때의 아주 중요한 지점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요즘 그때와 똑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면서 다름을 느낀다. 아이는 자기의 세계를 글 대신 스케치북에 건물 설계 도면으로 그려내거나 레고로 건물을 지어내면서 표현한다. 아이가 말도 거의 못 하던 아주 어린 시절, 아기 블록으로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 텅 빈 복도 같은 공간을 가리키며 "여기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에요."라는 말을 해서 수정화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던 기억이 난다. 이 아이는 훗날 건축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예언 같은 말씀에, 아이를 과하게 이뻐하는 할매의 과한 상상이 아니시냐며 나는 그저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아이는 벌써 꽤나 진지한 꼬마 건축가가 되었다. 3칸짜리 레고를 붙였다가 4칸짜리 레고를 바꿔 끼웠다가 옆으로 치웠다가 하면서 끝없이 자기만의 퇴고를 거친다. 마치 내가 글 속의 한 단어, 한 문장에 집착하며 끝없이 지웠다가 고쳤다가 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어질러진 집을 치운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나눠주고 버리기까지 하는 무자비한 엄마지만, 어쩐지 아이가 자신의 레고 작품을 아끼는 그 마음은 알 것만 같아서 쉽게 해체하지 않고 거실장 한편에 전시해 두게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한없이 소중해서 아끼게 되는 그 마음을.




학부에서 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심리학자로 살기 위해 길을 모색하던 중, 진로를 틀어 다시 의대에 입학하면서부터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다가 오로지 의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저 밑에 뚝 떨어진 지방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동기들은 시험 점수가 모자라 인서울을 하지 못했다며 낙향한 것 같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지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인연이 된 이 공간, 나를 의사로 만들어주게 될 고마운 공간을 그렇게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지방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향유하기 위해, 그리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괴짜 같은 나를 스스로 응원하고 북돋아주기 위해 지방유학의 기록들을 하나씩 블로그에 남기던 것이 그 시작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글을 세어보니 대략 200여 편 정도 된다. 그중 다시 윤문하고 재구성해서 올릴만한 글이 100여 편 정도는 될 것 같다. 브런치에 어떤 식으로 올려야 할지 아직은 정하지 않았다. 다만 한 공간에 기존의 글을 다시 정리해서도 올리고, 지금처럼 새로 써서도 올리다 보면 시점이 뒤죽박죽 뒤섞일 것이 걱정되어, 기존 글에는 서두에 작성 시점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구분해두기로 했다.


장아찌처럼 장독대 안에 쟁여두고 슬쩍 뚜껑을 열어 혼자 그 안을 들여보다가, 가끔 내 장아찌가 조금 아까워질 때면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이거 내가 정성껏 담근 거야. 한번 맛볼래?" 라며 글을 보내주던 것이 세상에 글을 내보이게 된 첫걸음이었다. 뜻밖에도 주변에서 크게 응원과 도움을 보내준 덕에, 결국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게 참 뭐라고 이렇게 뿌듯하고 기쁜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박사 논문을 통과했을 때나 교수 발령을 받았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좋다. 늘 마음 한 구석 어딘가 모자라다는 결핍감에 시달려왔는데, 요즘은 오히려 가슴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가슴 안에 담아두었던 걸 꺼내고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지는 이 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물론 인기 작가에 비하면 정말 적은 수의 구독자이고, 게다가 대부분이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분들이라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 유튜버들이 끝자락에 남기던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꼭 수익만을 위한 멘트는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시간을 돈주고 사서 얻은 휴직 기간이라 시간의 소중함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요즘인데, 그래서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작법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책을 빌려오고 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의 이름과 너무도 비슷한 점에 이끌려 우연히 정여울 작가의 책을 빌렸는데, 그 안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였다. 나 역시 내 이야기를 장작처럼 태워서 다른 이를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나 혼자 간직하는 게 나은 이야기'와 '함께 나누면 더 좋은 이야기'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요.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나의 이야기를 장작처럼 불태워서 다른 사람의 추운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 써야 한다는 기쁜 의무감을 충족하는 글쓰기가 저의 꿈이에요. (45p.)

왜 작가가 힘든 경험을 이야기할수록 독자들은 좋아할까요. 작가라는 존재는 자신의 고통을 장작으로 삼아, 그걸 이야기의 불꽃으로 태워서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거예요. 상처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입니다. 상처를 통해서 우리는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지요.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도요. (174p.)

끝까지 쓰는 용기 by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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