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사랑의 기억
※ 2015년 9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사건은 돈오돈수처럼 일순간 삶에 대한 내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모인 것은 종내 흩어지고, 만남은 이별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처음으로 몸으로 깨달았다. 존귀함이란, 독단이나 고립이 아닌 온전한 자립 위에서 다른 존재와 이루는 공존이다. 바깥에서 흔들흔들 헤매며 평생토록 자리잡지 못하던 삶의 무게추가 비로소 내 발 아래로 놓이며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외할머니와의 사별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을 고통스럽게 겪어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별에 대해서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외할머니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은 할머니의 병세가 깊어짐에 따라 점차로 예견되고 있었다. 하지만 본디 이별이란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다. 불현듯 들이닥치는 것이다.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삶의 중요한 특성이란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나니, 내 안의 뭔가가 바뀌어버렸다.
마침 그즈음, 여러 일들이 겹쳤다. 남자친구와 이별 직후, 새벽 병동에 출근해 중환자실로 향했는데 내가 맡던 환자의 침상이 비어있었다. 삶이 내게 보내는 은유인지, 혹은 경고음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꿈에 그리던 현대무용 수업을 등록했다. 몸을 올바르고 자연스럽게 쓰는 방식에 대해서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에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그래서 잘못 꺼냈다가는 나와 상대방을 다치게 만드는, 어떤 에너지 덩어리를 단정하고 정리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망과는 달리, 나는 가장 기초적인 동작부터 배우고 있다. 척추를 정렬하고 두 발로 단단히 서는 것부터,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을 바깥으로 꺼내고, 마음이 위축될수록 허리를 곧게 세우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겨보는 동작들을 배운다. 늘 책상 앞에서 고리타분한 의학 이론만 배우다가 몸으로 하는 무용 실습은 그 자체로 신선하기도 하지만, 매 시간 수업을 들을 때마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였지 싶어서 감탄사가 나온다. 안무실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연습하는 것도 아주 원초적인 느낌이라 기분이 유쾌해진다. 내 안의 불완전 연소된 에너지를 온전히 태우고 나의 것으로 만들고 나서야, 상대를 따스함으로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돌이켜보면 병원 입사 이후의 나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전 병원에 놀러 온 친구에게 퇴색된 나의 모습에 대해 하소연을 하다가 순간 목이 메어버렸다.
"누구보다 색채가 확실하고 삶에 리듬감까지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이 파란색 수술복에 물들어서, 나만의 색이 사라져 버렸어. 내가 무얼 좋아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이젠 기억이 잘 안 나. 이건 내가 결코 원하던 삶이 아니었어. 한심한 인간이 되어버려서 숨 쉴 틈 없이 괴로워."
의대에 입학하여 획일화되고 경직된 학과 분위기에 정말 기진맥진해진 나를 보며 엄마가 한마디 조언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결코 너의 불꽃을 꺼뜨리지 마렴. 어떤 경우에도."
본과 1학년 초반에 들은 이 말은 이후 본과 생활의 다짐이 되었다. 모두가 폭탄주를 마실 때 홀로 방 안에 다관을 마련하여 보이차를 내려마시고, 모두가 시내 영화관에 갈 때 홀로 배낭 메고 지리산, 토함산을 다니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안의 불꽃을 소중히 키워나갔다. 쑥쑥 커 오르는 화분 안의 강낭콩 줄기와 차고 기우는 달을 지켜보며 보내던 그 시간이 그래도 행복했다. 자취방에서 술 한잔에 가야금을 같이 연주하던 국악 과외선생님도 있었고, 같이 암벽 위에서 건강한 땀방울을 뻘뻘 흘리며 암벽 등반을 하던 산악회 동료들도 여럿 있었다. 집 밖 창문으로는 강과 멋진 석양이 보이는 그곳에서 보낸 고독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풍요롭고 풍성한 때였다.
더 이상 무미무취한 상태로 한심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모두들이 바라보는 그 한 점의 세속적 성공을 나는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것과 내 안의 것 모두를 이뤄낼 수 있으리란 무리한 욕망을 내려놓고, 이제는 나다운 길을 걷기로 했다.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그 불꽃을 소중히 여기면서, 가만히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풀잎 소리 들으면서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때 비로소 환자들에게도 여유롭게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6개월 전 위암을 진단받으셨다. 혹시 모를 기대감에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위암 수술을 감행하였다. 역시 수술을 받기엔 너무 고령이셨던지 컨디션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수술 전에 받았던 기대 여명보다 훨씬 일찍 돌아가셨다. 그 6개월 동안을 나도 병원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보냈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고통의 절반은 원망이라는 감정이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리겠다는 거야. 늙어버린 할머니 미워. 나를 할머니에 의지하게 만든 엄마도 미워. 남들은 오십 돼야 고아가 되는데, 나는 왜 이십 대에 벌써 고아가 돼야 하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이었나. 할머니는 한 시간에도 몇 차례 초록색 담즙을 토하시고, 나는 그때그때 토하신 담즙의 양을 재면서 매일을 보냈다. 하루는 할머니가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실 정도로 초록색 토를 많이 하신 어느 날, 토를 치우고 기록을 하느라 같이 날밤을 꼴딱 샌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다. 말할 기운도 없었던 할머니가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애야. 어서 아침밥 먹으렴.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그때 모든 원망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할머니로부터 평생 받을 사랑을 이미 다 받았다고. 그러니 이제 얼마든지 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넘치게 받은 이 사랑을 나눠주며 살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투병하시던 바로 그 건물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일을 하면서도, 그때를 완전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혹은 절망스러웠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게 두려워서 내 마음이 기억을 못 하게 막아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봄철 얼은 눈 녹듯이, 가슴속에 꽁꽁 가둬두었던 사랑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은 햇살 속에서 곤히 자는 누군가의 머리맡에 조용히 손을 대어 그늘을 만들어주는 일.
무더운 한여름 밤에 잠 깨울까 봐 가만가만 끝없이 부채를 부쳐주는 일.
https://youtu.be/9iPhEISQ5jE?si=m6pi2-5yf7kyaz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