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게 살아가는 첫걸음

원인을 넘어, 받아들임으로

by 아토

한참 아프고 나니 몸도 마음도 어딘지 모르게 아득해진 느낌이 든다. 내 안이 텅 비워지니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 몸짓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미리 생각하거나 대비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레 알아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던,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 조금씩 실현되는 듯해 값지고 감사하다.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증상이 내 몸에 옮겨오는 듯한 병증을 앓았다. 소화불량, 근육통, 호흡곤란, 우울과 불안 – 가릴 것 없이 상대의 증상을 그대로 느꼈다. 특히 환자를 직접 대면 진료하는 임상 의사가 되고자 했던 내게 그건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그런 사람들을 ‘엠패스(Empath)’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엠패스들은 감각의 과부하를 그것이 감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몸에서 물리적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주변의 에너지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신체 증상까지 우리 몸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감정과 우리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다른 이들의 아픔과 상처, 슬픔, 기쁨, 행복, 고민 등 온갖 에너지를 그저 그것이 당신의 자각 반경 안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다 흡수하며, 이런 감정들이 당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한다고 상상해 보라. (66p)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by 아니타 무르자니


이 과도한 공감력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원인을 찾는 데 매달렸다. 하버드 의대 출신의 신경과 의사인 조엘 살리나스도, 정신분석학적 글쓰기를 하는 김형경 작가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다. 뇌과학적으로는 공감 뉴런이 과도하게 발달했다는 이론, 정신분석학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 요가에서 말하는 에너지 센터의 개방 등등.


지나고 보니 원인을 아는 것과 해결책을 찾는 것은 동일선상에 놓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에 불편함을 유발하는, 기형과 가까운 이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결핍과 통증 안으로 들어간 바로 그 자리에서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할지 아직 명확히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다만 이 몸과 마음을 소중히 돌보면서, 내게 말을 거는 이들의 아픔과 외로움에 함께 공명하는 가운데 좋은 길로 인도될 거라는 믿음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모습의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첫걸음이니까.



https://m.youtube.com/watch?si=0Y6j6r14oMX6kMgu&v=tyycxwrtPo4&feature=youtu.be

https://youtube.com/watch?v=LPUwYr3rjdQ&si=Dg_ZeQLGJPLyhV9


제 글을 읽고.. 장여울 작곡가가 떠오르는 곡을 찾아주고, 친정엄마가 곡해설을 찾아주셨네요. 여럿이서 글 한 편을 써나가는 느낌입니다.

든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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