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해부학 실습에서 마주한 삶의 자리

by 아토

※ 2011년 3월, 의과대학 본과 1학년 해부학 실습 중에 적은 기록입니다.


서양의학은 참 날카롭다고 느낀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버텨내기 힘들 것이다. 내가 좀 더 어릴 때 의과대학에 입학했더라면 결코 버티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해부학 실습 시간, 시신을 면도칼로 구석구석 헤집을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베이고 헤집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내 마음을 헤집고 있는 이 아픔은 사람을 살리는 칼 끝에서 오는 것임을. 한 명의 노련한 검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천 번, 수만 번 자기 손이 베이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 속에서 그래도 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고통과 슬픔이 지워진 의학 용어들은 여전히 메마르고 매력 없지만, 오랫동안 이 세계에 몸담아온 스승들은 병명 뒤에 가려진 환자들의 고통을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용어들을 여행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지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젠가 이 지도 위에서 나만의 결로 사람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날개를 펼 수 있겠지.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학교에 보내다가, 오랜만에 두 시간의 공강이 생겼다. 잠시 집에 들러 요가를 하고 왔다. 몸이 지쳐 있었기에 내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학교로 돌아오는데, 불현듯 '공간'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살아있음, 삶을 정말 삶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공간, 곧 여유를 담을 수 있는 비어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해부학 교과서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 안에는 잠재적인 공간(potential space)이 있지만, 시신에서는 볼 수 없다.' 병은 한 치의 여유도 없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작된다. 공간이 사라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던 그것이 없어진다.


참선을 통해 분별심으로 생긴 무수한 경계와 벽을 허무는 일.

요가로 근육을 이완시켜 몸 안에 공간을 만드는 일.

너와 나 사이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관계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삶 다운 삶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건강하려면 공간을 챙기면 된다.

공간은 어떻게 챙길 수 있을까?

몸과 마음 안에 공간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더 좋은 길이 있다. 세상과 통해있는 것이다. 그러면 온 세상이 곧 우리의 공간이다.


https://youtu.be/p-T6aaRV9HY?si=UV1rzwZ_Z8-crW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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