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머무르다
얼마 전 나의 길벗, 화가 언니와 각자의 아들을 데리고 가평의 한적한 펜션으로 짧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언니와는 재작년 봄에 시작된 티베트 불교 강의에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불교 공부 모임이 그렇듯 그곳도 50-70대의 장년층이 주를 이뤘다. 그 속에서 막내들인 우리는 서로 의지하다 보니 어느덧 소중한 여름휴가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언니와의 인연은 단단히 이어져 있다. 작년에 언니가 직접 만들어준 은빛 염주는 이제 잘 때조차도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아들들을 물가와 침대 위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우리 둘은 펜션 안팎을 오가며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눴다. 젊은 시절 술과 담배를 즐겨했다던 언니는 오히려 그때 더 속박되어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술과 담배를 하는 여자는 얼핏 보면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딜 가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을 찾아 헤매야 했고, 금연의 고통이 까마득해 결국 장거리 비행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유롭고자 했던 선택이 역설적으로 본인을 자유롭지 못하게 묶어버린 셈이다. 언니는 무언가를 자제하는 일은, 질투하는 상태와도 다르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무작정 참아야 했기에 “쟤네는 다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못하나.”라는 박탈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데에서 진정한 힘을 느꼈다고 했다.
자유라는 것은 무분별한 삶의 방식을 통해 남들과 반대급부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상태였다. 가장 단순하고 정갈해서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삶을 사는 스님들을 뵐 때면 걸림 없는 평온함이 얼굴에 스며 있음을 느끼곤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 것만 같았다. 그 평온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내 마음속에도 질문 하나가 조용히 일었다.
언니의 말을 들으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를 단단히 묶어두었던 것은 외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여겼던 관계에서조차, 그 안에 머무르려는 집착 때문에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었다.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속박이 되기도 한다.
‘자유롭기 위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머릿속에 물음을 가득 안고 강가를 걷던 중, 같이 산책을 하던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가평으로 여행 와서 이것저것 많이 했잖아. 언제가 제일 좋았어?”
당연히 오랜만의 물놀이를 꼽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의외의 대답을 한다.
“응, 지금이 제일 좋아.”
“지금? 뭐 하는데?”
“응, 엄마랑 산책해.”
짙은 그리움의 과거에서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서도 벗어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헤매고 있을 때 이미 아이는 소중한 현재에 머물고 있었다.
https://youtu.be/RP29Qn00_Nw?si=c4dC48JFlOP985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