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야 보이는 길

방관자 효과가 가르쳐준 빛

by 아토

대학생 시절, 심리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때였다. 밤 10시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내 앞에 앉아있던 승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고통스럽게 버스 안을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뇌전증 환자의 발작이라 판단하고 나름의 조치를 취해주었겠지만, 그때는 의대에 들어가기 전이라 뇌전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주변 승객들은 쉬쉬하며 곁눈질만 할 뿐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핸드폰을 찾아들고 최근에 가장 통화를 많이 한 번호로 전화를 거니 그의 형이 전화를 받았다. 뇌전증 환자이니 근처 정류장에 그를 내려주면, 얼른 데리러 가겠다고 하였다. 문제는 환자는 건장한 성인 남자였고, 나는 힘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여자였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서는 안되는데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사회심리학 시간에 배웠던 ‘bystander effect (방관자 효과)’가 떠올랐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데,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거라고 방관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특정인을 지목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래서 버스 안을 둘러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를 지켜주고 있는 듬직한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 남자들의 눈을 마주치며, “이 환자분을 버스에서 내리게 좀 도와주세요.”라 도움을 요청하니 어깨를 으쓱하며 다들 나를 도와주러 나왔다. 정류장에 내려서도 길을 헤매는 환자분의 가족을 기다리느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잘 마무리하고 뿌듯하게 귀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심리학 이론이 갖는 유용성에 매료되어, 결국 심리학과 석사 과정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막상 석사를 하게 되니 생각보다 사변적인 연구 과정에 회의감을 느껴, 결국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어서 현재는 의사로서 살고 있다. 공학을 거쳐 심리학을 건너 결국 의학에까지 이르게 된 나의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들려주며, 종종 우스갯소리로 “사람을 살린 심리학이라며 특정 학문에 매료될 게 아니라, 버스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환자를 보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나 자신을 보았어야 했는데… 괜히 다른 길로 시선을 돌렸다가 한참을 돌아왔지 뭐야.” 라 말하곤 한다.


심리학과 대학원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은, 방관자 효과를 연구한다는 것은 대상자를 의도적으로 넘어뜨린 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돕는지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지를 멀리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심리학과를 벗어난 직후에는, 곤경에 빠진 사람을 멀리서 그저 관찰하고 기록만 하는 심리학자가 지나치게 인간미 없어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넘어진 사람에게 달려가던 내가 단지 심리학자의 역할과 맞지 않았을 뿐, 각자 저마다의 소명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버스 안에서 쓰러진 승객을 도운 뒤, 나는 심리학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았어야 했다. 아파하는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연민, 그 순간 발을 내딛게 한 용기.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있던 빛이었다. 나는 늘 바깥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정작 내 안에는 그만큼 빛나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오래된 자기 비하의 습성이, 나를 참 많이도 돌고 또 돌게 만들었다.


버스 안에서의 경험과 그 이후의 선택들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도 가끔 내게 묻곤 한다. 여전히 나 자신을 믿지 못한 채, 바깥에서만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건 아닌지. 내 안에도 이미 깊고 소중한 마음이 흐르고 있는데, 보지 못한 채 또 한참을 돌아가는 길 위에 서있는 것은 또 아닌지. 내가 너를 빛나게 보았던 것은, 실은 내 안의 환한 빛이 너에게 닿았던 것임을. 언젠가는 이 진실을 가슴으로 깨닫기를, 오늘도 바라며 살아간다.


https://youtu.be/tPqf69AjyJw?si=3FEL7rMpAzOcQY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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