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함께 하는 사람의 꿈
퇴근길, 음악을 틀어놓고 홀로 운전하던 순간, 불현듯 생경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오며 ‘아직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실감되었다. 내가 누리는 이 찰나의 하루하루가 선물임을 깨닫는 순간, 석양 속에서 무한한 평온과 찬란함이 밀려왔다.
루푸스를 진단받은 지 어느덧 일 년. 병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반년 간 휴직을 감행했고, 몸이 신호를 보낼 때 멈추고 내려놓는 법, 일종의 ‘질병을 조절하는 감각’을 익혔다고 믿었다. 하지만 휴직의 끝자락에 크게 앓으면서 일주일 사이 4킬로 가까이 빠졌고, 이후 깊은 허무함과 좌절 속에 빠져 지냈다. 아무리 스스로를 공주님처럼 달래면서 살아도 결국 병은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복직해 다시 일상을 재건해 나가는 동안, 나는 루푸스라는 병이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에도 불씨가 되어 언제든 중환자실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죽음이 내 삶에 손을 얹고 있는 듯 실감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게 살다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십 대 초반, 편찮으신 외할머니 곁에서 함께 자며 나는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산다고 느꼈다. 새벽마다 곤히 주무시는 외할머니의 콧가에 손을 대어 숨결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곤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영원한 이별의 두려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그 두려움 너머에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크게 화낼 일도 없을 것 같은 ‘노인네의 마음’ 하나만 남는 걸 본다.
죽음을 실감하며 문득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본다. 나는 ‘더 깊이, 더 많이, 두려움 없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지 않을까. 사랑지상주의자인 나는 분명 그러리라. 그래서 바란다.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 가슴속에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자국을 남기며 살기를.
살아갈 날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는 감각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불러낸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나는 임종까지 함께하는 다정다감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허약하고 공감력이 과했던 몸 탓에 임상 의사의 길은 가지 못했지만, 언젠가 호스피스의 영역에 몸을 담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제 와서 환자 케어를 다시 공부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되는 건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기여할 길을 찾고 싶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그들의 삶을 재정리하고 의미를 새롭게 엮어내는 짤막한 자서전을 대신 써주고 싶다. 상대와 함께 공명하는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힘으로 그들이 남기는 마지막 유산을 의미 있게 정리해주고 싶다.
나는 감사하다. 루푸스 치고는 경증이고, 증상도 비교적 잘 조절되고 있다. 출퇴근을 감당할만한 체력도 있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쉬어야 하지만 여가도 누릴 수 있다. 아직은 꿈을 꿀 수 있는 경증의 환자라는 조건,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더 서둘러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볼 수 있는 이 ‘시한폭탄 같은 루푸스’를 안고 있다는 이 조건이 오히려 감사하다.
내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그래서 석양 속에서 내가 느꼈던 빛처럼,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그의 어둠을 조금이나마 덜어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