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꼬마 예술가의 종말
처음부터 미술을 싫어한 아이는 아니었다. 서양화를 전공했던 이모 덕에 집안 곳곳에 그림과 화구들이 가득했다. 거기에다 미술동아리를 했던 엄마의 피가 나에게도 이어진 건지, 어릴 때는 그림 그리기를 제법 좋아했다. 어릴 때 스키장에서의 즐거웠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이모와 친한 화가 아저씨에게 그림 구석 구석을 설명했던 순간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꼼꼼하게 끝맺는 성격은 아니어서, 채색 몇번 휙 하고는 미완성으로 남긴 스케치들이 내 '스케치북'에는 한가득이었다. 스케치가 끝나면 채색을 시작하기도 전에 흥미를 잃어버리곤 했다. 쌓여있는 스케치들에 채색을 다 하기 전에는 집에 갈 수 없다던 유치원 선생님의 잔소리는 덤이었다. 그냥 원생의 크로키 내지 습작으로 봐주면 안되었을까.
어린 나이부터 미술학원에도 다녔다. 아직도 또렷한 기억이 있다. 정물화 시간, 선생님이 꽃이 담긴 화병을 내 앞에 놓고는 아마도 본인이 그렸을 예시 그림을 휙 보여주더니 정물화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화병을 생긴 대로 그렸다. 그런데 막상 그려놓고 보니 그림 한쪽이 허전했다.
“선생님, 화병을 그렸는데도 그림이 허전해요. 어떻게 해요?”
“음… 그러면 옆에 사과나 그리든가.”
“사람이요?”
“사.과.”
“사람이요?!”
나는 선생님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는, 무미건조한 대답에 주눅이 들어 왜 사람을 그려야 하냐고 다시 묻지도 못한 채, 의아함만 품고 화병 옆에 화병보다 작은 사람을 소심하게 한 명 그려 넣었다. 결국 큰 화병과 작은 사람을 나란히 그려 넣은 전위적인 작품을 선생님께 내밀었고, 선생님은 그야말로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날로 소심한 꼬마 예술가의 인생은 막을 내린 듯했다.
만약 선생님이 그때 ‘비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네가 그 자리에 무엇을 두고 싶은지, 아무것도 두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봐주었다면.
그저 작은 사람을 그려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면.
그 꼬마는 지금쯤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