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와 미소의 문턱에서

한진섭 작가님의 작업실을 다녀와서

by 아토

직접 만져보고, 끌어안고, 맛보아야만 가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장엄한 냉철함 속에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따스한 온기가 잠재워져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까. 부, 명예, 안락함, 진실된 사랑, 영원한 만남. 정녕 저마다 다른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사실 다른 듯 같게, 한 점의 빛을 향해 점차로 나아가고 있는 중일까.


내가 만난 한진섭 작가님은 돌이 품고 있는 다정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조금 더 확정적으로 단언하고 싶지만, 아직 돌의 표정을 보지 못한 나는 작가님의 돌에 대한 애정과 한없이 따스한 시선을 좇아가며, 저 돌 안에는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나 보다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이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등 다양한 증상과 기질과 사연을 가진 가족들이 그저 아이의 행복 하나만을 바라보고서 뭉쳤다. 오색 빛깔 다양한 아이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꽃피워 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레인보우 클래스'라 이름 지었다. 우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주말에 모여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한다. 학교처럼 책걸상을 갖춰놓고 모여 앉아 도형 수업을 하기도 하고, 그동안 아이들이 보인 문제행동을 모아 각색해 종종 역할극도 해본다. 예술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물감을 온 사방에 묻혀 놓아 어른들이 치우느라 진을 빼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 아이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며 뼈아픈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자라난다는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고, 우리들은 계속 만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각자가 품은 잠재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깨어있어야 한다고, 그러니 부모가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며 우리 모임의 수장이자 담임인 수정화 선생님은 늘 목 놓아 강조하셨다. 당신의 홍익대 미술대학 동문 중 본받을 점이 아주 많은 훌륭한 작가님이 있으니 본인이 한번 주선을 해주겠다, 가서 직접 보고 체험하면 배우는 것이 많을 거라며, 안갯속을 걷고 있던 무지몽매한 부모들의 등을 떠밀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나는 점심 햇살을 피해 한진섭 작가님의 안성 작업실 마당 한 편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었다. 돌은 늘 차갑고 단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 돌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는 나의 말에 작가님이 대답 대신 슬며시 미소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직접 바라본 작업실은 공사 현장 그 자체였다. 몇 톤짜리 석재를 옮기기 위해 거대한 작업실 천장에 설치된 크레인, 단단한 돌을 깎아 내기 위한 각종 공구들, 방을 한가득 채운 수백 점의 프로토타입과 사방에 내려앉은 돌 먼지. 작가님은 일 년 365일 이 작업실에 머무른다고 하셨다. 아침 일찍 나와 밤이 될 때까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날씨가 좋은 날만 고르다 보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진이 쪽 빠질 정도로 더운 날이든, 뼈 사이로 추위가 스며드는 날이든 가릴 것 없이 작가님은 작업을 쭉 이어 나간다. 끊임없이, 그리고 끊김 없이.


돌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평생 동안 돌조각을 하고 계시냐는 나의 질문에 작가님은 돌이 가진 무한한 정직함을 첫 번째로 꼽았다.


“돌은 한 번 치면 딱 한 번의 자국만이 남아요. 한번 쳐서 여러 번의 효과를 낼 수는 없어요. 그리고 작업 중간에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고,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해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일거양득을 모토로 삼으며 숨 가쁘게 살아왔던 나는 그게 어떻게 매력일 수 있냐는 반문을 할 뻔했지만, 그 순간 작업실에 쌓여있던 숱한 돌 먼지들이 머리를 스쳤다. 수백 수천만이라는 숫자로는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은 돌 먼지들이 꼭 그만큼의 내려침을 통해 생겨났을 거라는 상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우직한 마음으로 작가님은 바티칸에 놓일 김대건 신부님의 석상 작업을 완수했다. 5개월 동안 이탈리아 카라라의 채석장을 직접 다니며 김대건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 돌을 찾았고, 8개월 동안 피에트라산타의 조용한 수도원에 머무르며, 먹고 자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을 조각에 바치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과중한 부담감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작가님의 설명을 들으며 수도원에서의 작업 사진을 보는데, 사명을 가진 이의 묵직하고도 숭고한 낯빛이 보였다.


아이의 잠재된 재능을 일깨워주기 위해, 나는 뒤늦게 예술을 가까이하며 살고 있다. 생전 가본 적 없던 현대미술 전시회를 가기도 하고, 연구실 한편에 마티스의 그림을 걸기도 하며 점점 예술을 벗하게 되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예술 작업은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초기에 매혹되던 각종 장식적 요소들이 점차로 제거되며,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본질만이 남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와 사자를 거친 뒤 도달하는 어린아이의 상태가 그것일 것이다. 그 순수성에 도달한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어스름 저녁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작가님이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신다.


“내 눈에는 아이들이 다 천사들로 보여요.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애들이랑 뭐가 그리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세상 사람들 모두 편견 없이 이런 맑은 시선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봐 주면 걱정이 없겠네 싶다가 이내 이 어미의 욕심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그 숱한 인연의 다리를 건너고 건너, 미리내 성지 옆 작업실까지 기어이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정이 무심하게 돌을 쪼듯, 작가님의 시선이 나에게로 와닿는다. 일순간 가슴속에 재워 두고 있던 내밀한 소망이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는 의학 연구를 하고 있는 고루한 대학 교수로 살고 있지만, 에세이 작가를 꿈꾸고 있다는 말이 걷잡을 새 없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화가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캔버스에 담듯이 사람들의 빛나는 모습을 원고지에 담고 싶다. 글을 쓰면서 생동감 넘치는 행복을 느끼고, 때때로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이 만남을 계기로 문예창작과 진학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일순간 깜짝 놀란다. 그날이 오면 나도 한 단어에 자국 한 번만 남기며, 내 안의 빛을 좇으며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가슴속에 깃드는 모습을 본다.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서 이 자리를 주선하신 게 맞아요? 한진섭 작가님께 오히려 제가 영감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수정화 선생님이 짜 놓으신 판에 제가 제대로 걸려든 것 같은데요?”


수정화 선생님은 이미 다 짐작하고 계셨다는 듯 웃음 짓는다. 별다른 말을 더할 필요 없이, 미소와 화답으로 이어진 세계에 조심스레 한 발을 들여본다.


한진섭 작가님의 안성 작업실 마당에서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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