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안은 파도

내면의 안식처 만들기

by 아토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무수한 자극들이 내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빛, 소리, 냄새, 공기와 같은 자극들뿐만 아니라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 몸 이곳저곳에 남겨져 있다가, 나에게 한 번쯤은 더 들여다봐달라는 듯 통증의 형태로 되살아난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세상 모든 것들을 강렬하게 느끼면서 사는 것일까? 어떻게 그들은 이 자극의 홍수 속에서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어릴 때는 딱히 비교 대상이 없었기에 남들도 세상을 이토록 강렬하게 느끼며 살아간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가 남들에 비해 유달리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층 부엌의 식탁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중, 2층 방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의 진동 소리를 듣고 “전화 왔다!”며 내가 2층으로 달려 올라가는 걸 보고 온 가족이 아연실색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훗날 아이의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 이후에 다양한 증상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이 증상은 ‘감각 과부하’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감각적으로 예민하여 어릴 때부터 키우기에 유달리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두 돌 무렵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데려갔었는데, 바리깡의 윙하는 소리와 드르륵거리는 진동감을 한번 겪더니만,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이후 미용실에 가기만 하면 온 세상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다. 그래서 아이의 머리가 장발이 되도록 참고 참다가, 나는 결국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는 내관이 된 듯 마음을 굳게 먹고 미용실에 가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빛과 소리 자극에도 무척 예민하여 사람이 붐비는 정신없는 마트나 대형몰에 최대한 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경우, 소음 차단용 헤드폰과 빛을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씌워서 최대한 아이에게 안전한 피난처(shelter)를 마련해 줬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기 전이었지만, 30년 전부터 비슷한 감각 과부하 증상을 겪고 있는 엄마의 무의식적인 보호였나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점차 본인의 다름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수교사 선생님이 계신 초등학교로 진학을 하다 보니,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학교로 가지 못하고 산 하나를 넘어 통학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하루에 두 번 아이와 숲 산책을 하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지만, 아이로서는 아침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이들과 다른 방향으로 등교를 하는 것이 영 이상했던 모양이다.

“엄마, 우리 아파트 사는 애들은 다 ㅁㅁ초등학교로 가는데, 나는 왜 더 멀리 있는 ㅇㅇ초등학교로 가요?”


아이가 다름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아이의 장애에 대해 말해줘야 할지 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주었다. (앞으로의 글에서 아이의 이름은 수리라고 쓰고자 합니다. 태명으로 열 달 동안 불렀던 이름이기에 저희에게는 또 다른 애칭이기도 합니다.)


수리는…

남들이 조그맣게 듣는 소리를 크게 듣고, 남들이 옅게 느끼는 맛을 진하게 느끼고, 남들이 연하게 보는 색상을 짙게 본다고.. 그래서 남들은 요만하게 느끼는 힘듦도 수리에게는 이따만하게 힘들 수 있다고. 엄마가 수리가 참는 힘이 약하다고 늘 혼냈지만 어쩌면 더 많은 걸 참아내야 했으니, 수리는 친구들보다 인내심이 더 큰걸 수도 있다 설명했다. 그랬더니 수리가 되물었다.


"나는 왜 그런 예민한 몸을 가졌어??"

"그건 엄청나게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만들 수 있는 예민하고 소중한 몸이야."라고 했더니 아이가 끄덕거리며 그제야 불안함을 내려놓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수리한테는 예민한 몸과 마음을 가진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어려움이 있어서, 수리를 깊게 이해하고 소중히 대해줄 수 있는 특수교사 선생님들이 계신 ㅇㅇ초로 진학한 거라고 설명했더니.. 수리는 좀 멀더라도 ㅇㅇ초를 가는 것이 좋겠다, 다음날 이동 수업 때 특수반 선생님 만나는데 벌써부터 너무 보고 싶다며 제 스스로 납득을 하는 것 같았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나눠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은 부모가 겪었던 과거 시절의 결핍에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학비가 없어 끝내 학업을 마치지 못했던 부모는 본인의 자녀가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을 일궈내고자 노력하고, 주변의 기대나 압력에 눌려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했던 부모는 자식만큼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산다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 원인은 어쩌면 보호자의 부재였다기보단 감각 과부하에서 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수한 형태의 자극들이, 막을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끝없이 내 안으로 관통해 들어왔으므로.


그래서 나의 아이에게만큼은 불안에 떠는 어린 시절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았고, 근 20년간 명상을 하면서 터득한 나름의 비법을 아이에게 하나씩 가르쳐 주고 있다. 자연과의 접촉, 동적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 그리고 육체의 돌봄이다. 언젠가 브런치를 통해 하나씩 소개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 마음의 기술들은, 어쩌면 오래 전의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학부 시절, 성인기의 발달 심리학 수업의 일환으로 김범진 작가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기운에 강하게 매료되어 강연 후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고, 그때를 계기로 여전히 페이스북으로 교류를 하면서 지낸다. 스물두 살의 어린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 이토록 예민한 사람이라는 자각은 없었지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는 이 예민함을 쉬게 할 대피로를 찾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민감하다는 것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성이며 재능이다. 이것을 타고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민감성을 살려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 이 책(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메시지였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기 쉬운 부드러운 면이 결코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깨달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해 주었고 마음의 힘이 조금씩 자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민감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것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은 자꾸 마음의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존재를 포용할 힘도, 더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바라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6p.)

세상이 당신에게 은밀히 요구하는 것 섬세 by 김범진


아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자기만의 따스한 안식처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바라건대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도소리가 늘 머물기를. 삭막한 빌딩 숲 속에서도, 자기 마음 안에서 들려오는 포근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무한한 평화를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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