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서 놀이로
한때 깊이 있는 정신분석을 받은 적이 있다. 분석가 선생님은 나의 첫 기억에 대해 물어보셨고, 나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던 때를 떠올렸다. 미국 유치원을 잠시 다녔는데, 말이 안 통하는 수십 명의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놀이터에 모여 놀며 부모님을 기다리다 보면, 주변 아이들이 하나둘씩 부모님을 만나 떠났다.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놀이터의 그네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분석가 선생님은 그때의 쓸쓸함이 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색채가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 쓸쓸함 옆에는 엄마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신분석을 일 년가량 받았을 때, 나는 그 장면을 환영처럼 다시 보았다. 꿈속에서였는지 명상 속에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소중한 친구들이 홀로 그네에 앉아있는 내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다정한 표정의 친구들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감각했다. 정신분석 과정이 끝으로 다가왔음을 나는 자연스레 알았다.
마흔의 나이로 어린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항상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겨놓고 정신없이 병원 일에 매달렸다. 올해 상반기, 반년 간의 육아 휴직으로 처음 아이와 느긋한 평일을 보낼 수 있었다.
육아 휴직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매일 오후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아들을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무리 속에 있던 아들이 나를 발견하면 함박웃음을 한번 짓고는, 이내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수줍음을 꾹꾹 눌러 담은 표정으로 다가오곤 했다.
“수리야. 오늘 학교 급식은 어땠어? 먹을 만했어?”
“응! 오늘은 돈가스가 나와서 아주 좋았어. 두 번이나 먹었어.”
일상의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누렸다.
엄마의 자리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 아이가 나를 슬프게 기다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내 존재를 잊지는 말되, 기다리느라 쓸쓸해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홀로 그네에 앉아 처연하게 석양만 바라보지 말고, 혼자 미끄럼틀도 타고 때로는 친구와 시소도 타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을 만큼 신나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 그래야 나도 씩씩하게, 미안함 없이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을 테니까.
석양 아래 홀로 그네에 앉아있던, 그 아이에게로 다가가 본다.
“나랑 놀자. 뭔가 재미난 걸 타도 좋고… 아니면 햇살 속에서 책도 보고 좀 뒹굴거릴까?”
정신없이 놀다가 엄마가 오는 순간을 혹시라도 놓칠 새라 머뭇거리며 불안해하는 아이를 달랜다.
“걱정 마. 엄마가 안 온 적은 없잖아. 나랑 놀다 보면 엄마가 올 거야.”
아이가 웃는다. 아직은 불안한 기색이 얼굴에 남아있지만, 즐겁게 그네를 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를 발견하고 다시 외칠 것이다.
“아, 엄마! 벌써 왔어? 나 그네 5분만 더. 조금만 더!”
아이가 기다릴까 봐 괜히 서둘러왔다며 엄마는 안심 섞인 한숨을 그제야 내쉰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기다림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다시 만날 사람이 있다는 약속이었음을.
그네 위의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함께 다가오던 시간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