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선물일지도

선물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by 아토

※ 2025년 7월, 복직을 얼마 안 남겨둔 상태에서 적은 글입니다.


음력 24년 9월 14일, 생일 전날 밤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운전을 하고 있던 퇴근길이었다. 류마티스내과 교수님으로부터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이전에 주셨던 이메일을 잘 확인했습니다. 이제야 외래 진료가 끝나서, 이렇게 늦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이메일로도 말씀드렸지만, 매년 반복적인 폐렴으로 계속 입원을 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제가 골골대는 걸 수상히 여기신 윗교수님의 권유로 피검사를 해보니 자가항체가 몇 가지 나왔어요. 그 외에도 전신 피로감, 근육통, 관절염 등… 의심하고 보니 심상치 않은 증상들이 여럿 있었네요.”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루푸스이신 것 같습니다.”


“아…”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류마티스 질환으로 오랜 세월 투병하셨던 외할머니의 기억, 그리고 외할머니와 어딘지 모르게 닮은 ‘체질’을 가진 엄마와 나의 늘 병약했던 모습으로 인해, 혹시 나에게도 류마티스 질환이 있는 건 아닐지 때때로 의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입을 통해 확인받는 건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 몸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안다’는 의사로서의 자만심 혹은 내 상태에 대한 부정이 어느 한편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류마티스내과 교수님과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하고 끊자마자, 곧이어 울음이 밀려왔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실제의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전공의 1년 차 시절, 중환자실에 입원한 소녀 환자를 위해 커다란 장비를 끌고 스무 번 넘게 중환자실을 오갔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애타는 마음으로, “한 번만 더 치료를 해보자, 한 번만 더 시술을 해보자”며 밤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매달렸었다. 그때 의식 없이 누워있던 소녀 환자의 진단명이 루푸스였다.


이제야 내 삶이 좀 안정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곧이어 루푸스 진단이라니 참. 하늘도 야속하시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둥근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꼭 생일 전날 밤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전야제’를 지내곤 하셨다. 생일 선물 치고는 상당히 가혹하다고 느꼈지만, 혹시라도 이 루푸스 진단이 내게 선물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달랬다.




22년 4월, 아들의 고기능 자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 이후로 정말 쉼 없이 달려온 3년이었다. 나는 당시 병원에서 가장 바쁜 막내 교수였고, 경력을 단절하고 쉰다는 건 상상해 본 적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결국 양육의 몫은 고스란히 친정 부모님께 떠안겨 드렸다. 보통의 아이 한 명을 맡겨도 너무 힘든 것이 현실인데, 우리 아이는 일주일에 10시간 가까이 특수치료를 받아야 하는 발달장애 아동이었다. 오랜 시간의 강도 높은 돌봄으로 친정부모님은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서, 두 분 다 번갈아가며 편찮아지시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전임교원 발령이 코앞이었지만, 루푸스 진단까지 받고 나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휴직을 하면 향후 승진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직까지도 각오한 채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다. 요즘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는 제법 육아휴직을 많이 쓰는 분위기라고 하나, 여전히 보수적인 대학병원 안에서 한창 어린 막내 교수가 ‘감히’ 육아 휴직을 쓴다는 건 작은 혁명에 가까웠다.




휴직 후의 삶에 대해 종종 주변인들이 묻곤 한다. “휴직하니 정말 좋아? 몇 달 쉬면 심심할걸. 그리고 다시 복직해서는 어쩔 셈이야.” 라며 부러움 반 걱정 반 섞어 묻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제 브런치에 휴직 후의 삶에 대해 천천히 기록해 나가 보겠지만 (안타까운 건 글을 쓰는 이 시점에 벌써 휴직기간이 거의 다 지나가버렸다는 것이다.) … 현재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휴직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좋다.

반년 동안의 쉼은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해졌다.

복직 후에도 이 감각을 잊지 않도록 나는 오래 기억하려 한다.


육아휴직 후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살림을 꼼꼼하게 챙기게 된다. 며칠 전, 아이를 등교시킨 후 집에 와서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이불 위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보며 짜증 대신 슬며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엄마 몰래 과자를 먹는 모습이 상상되어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게 바로, 휴직이 내게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