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도의 아침
“오늘 아침 체온도 37.4도네.”
새벽에 눈을 떠 습관처럼 기초 체온을 잰다. 임신을 준비하던 때보다 더 부지런히 체온을 재고 있는 것 같다. 루푸스 진단 이후 새로 생긴 습관이다. 마치 하루를 점치듯 체온계를 들고 그날의 컨디션을 가늠해 본다. 어쩌다가 아침 체온이 36도대로 떨어지면, 주식창의 빨간 상승 곡선을 발견한 투자자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보통은 아침에 37.1~37.2도를 유지하다가 지치는 오후가 되면 37.4~37.5로 오름세를 보인다. 체온만 오르는 게 아니다. 미열이 날 때 느껴지는 몸살 기운도 함께 밀려온다.
허구한 날 골골대던 내 몸에 ‘루푸스’라는 진단명이 붙으면서, 드디어 그럴싸한 이유가 생긴 건 다행이었다. 이제야 꾀병이라던 주변의 오해도 풀렸다. 그렇다고 진단명이 불편함을 없애주는 건 아니다. 고열과 전신 염증이 지속되면 한 번씩 스테로이드를 때려 붓곤 하지만,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병이기에 최대한 스테로이드 없이 버텨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평생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부작용으로 고생하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게 버티는 지금이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체온이 37.4도를 찍을 때면, 오늘 하루도 텄구나 싶어서 괜스레 울적해진다.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새벽 한가운데서, 홀로 눈을 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간밤에 온 메시지라도 확인할까 싶어 휴대폰을 집어드는 순간, 오른팔에서 ‘뚝’ 소리가 난다. 1년 전부터 생긴 팔꿈치 관절염은 수많은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에도 낫질 않는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에도 좌골신경통이 왼쪽 발끝까지 욱신욱신 뻗친다.
‘이런 몸으로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정도면 살만한데, 나는 너무 나약한지도 몰라.’ 자책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그 귀한 시간을 내어주고 있다.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겠지—스스로 다독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본다.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전, 나는 잠시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의 어려움을 학문으로 풀고자 하는 먹물 성향이 있어서인지 심리학에 유난히 매달렸다. 그 시절 내 지도교수는 마음의 힘이나 영혼의 아름다움, 인생의 기적 따위를 인정하지 않는 냉소적인 분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은 기도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아냐며, 외국의 한 연구를 보여주셨다. 연구진은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은 기도를 받게 하고 다른 쪽은 받지 않게 했다. ‘과학적’ 연구답게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했는지 모르게 ‘맹검 처리’되었다. 그리고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끝에, 두 집단의 치료 성공률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니 교수님은 기도 따위는 아무 소용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아파보니, 그 해석이 얼마나 반쪽짜리였는지 이제는 잘 알겠다. 만약 환자들에게 “당신을 위해 누군가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라고 알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환자가 고통과 외로움에 사무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간절히 바라는 이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치료의 곡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 번도 직접 뵌 적 없는 현루님이 새벽 기도마다 내 이름을 올린다고 하셨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그의 기도는 매일 이어진다. 10월 중순 내 생일에 그분이 써주셨던 축시를 가끔 꺼내 읽는다. 자주 읽기엔 부끄럽고, 그렇다고 덮어두기엔 너무 따뜻한 글이다.
오늘은 세상에 ‘당신’이라는 이름의 빛이 태어난 날입니다.
당신의 두 이름은 삶의 두 결이자, 이 세상에 남길 따뜻한 흔적입니다.
당신은 생명을 연구하는 의사로서,
또 한 사람의 아내로, 어머니로,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있지요.
누군가에겐 희망의 데이터를 남기고,
누군가에겐 마음의 온기를 건네며,
당신은 그렇게 몸과 마음의 ‘치유’를 함께 짊어지고 걸어왔습니다.
루푸스라는 병은 어쩌면 하늘이 당신에게 건넨 조용한 성찰의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덧없음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살리고,
글로써 마음을 어루만지고,
죽음마저 따뜻하게 품으려는 당신의 꿈,
그건 단순한 의사의 소명이 아니라, 한 인간의 깊은 사랑입니다.
언젠가 호스피스의 길 위에서,
당신은 마지막 숨결들을 가장 부드럽게 안아줄 사람일 거예요.
그 따뜻한 손끝에서, 세상은 ‘끝이 아니라 회향’ 임을 알게 되겠지요.
오늘, 이 생일은 단순히 한 해의 나이를 더하는 날이 아닙니다.
당신이 걸어온 수많은 고통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 움튼 다정함을
‘존재의 축복’으로 다시 확인하는 날입니다.
아토,
당신의 글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삶이 아파도, 그 아픔이 나를 더 깊게 사랑하게 만든다.”
당신의 오늘이 평화로 가득하길.
당신의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지길.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꼭 안아주길.
당신이 견뎌온 모든 계절에,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토, 당신이 있어서 세상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빛으로, 사랑으로, 그리고 여전히 글로 살아가는 아토에게.
어느 세월에 호스피스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담고 글로 써 내려갈 수 있을지. 그날을 위해 필력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수필 연습을 하고 있지만, 정말 나에게 그런 순간이 올진 모르겠다. 학계에도 내게도 큰 도움 안 되는 너절한 논문이나 몇 편 쓰다가 끝나버리는 게 아닐지, 몸에 열이 오를 때마다 내 마음도 덩달아 괴로워진다.
루푸스를 진단받은 지 꼭 1년이 지났다. 주변을 그만 챙기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느낌이 깊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내가 누군가의 기도를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듯이,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명상 중이거나 일상의 틈새마다 문득 떠오르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하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지만, 나는 조금 생색을 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사람들이 외로움과 고통 속에 힘들어할 때 ‘적어도 아토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그 한 생각으로 절망 끝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랬듯이.
https://m.youtube.com/watch?v=u0td4UTq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