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가족들에 관하여
여행 마지막 날, 선배가 포닥으로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 다녀왔다. 호텔 체크아웃은 오전 11시, 귀국행 비행기는 저녁 8시. 애매하게 남은 시간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던 나를 선배가 반갑게 초대해 주었다. 덕분에 커다란 캐리어를 연구실에 맡겨두고, 캠퍼스 안을 산책하며 유유자적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캠퍼스의 야자수 그늘 아래를 걷다 보니 문득 청춘의 한 장면이 스쳤다. 20년 전, 대학 동아리 운영진으로 학교 안팎을 뛰어다니던 시절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지만, 마치 가족을 만난 듯 익숙하고 따스한 공기가 흘렀다.
이번 여행은 혼자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외롭지 않았다. 나를 보살피는 여러 단톡방이 시차를 넘어 쉼 없이 돌아갔다. 낮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선배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을 통해, 무엇을 먹고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했다. 포닥 선배는 같은 지역으로 학회를 온 이 업둥이를 위해 열일 제쳐두고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우리와 만나지 못해 아쉬워했던 텍사스의 다른 선배는 내 여행 동선을 함께 보며 "아토야. 미국은 위험해. 짧은 거리라도 택시 타."라며 애정 반, 잔소리 반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물가 걱정까지 하며 적어도 세 끼는 먹을 미국의 식사권까지 선물해 주었다.
시차 적응을 못해 새벽에 덩그러니 깨어있을 때면, 한국의 ‘사랑방’에 조잘조잘 하루를 털어놓았다. 특히 그 방의 현루님은 한국 시간과 샌디에고 시간을 번갈아 확인하며 내가 끼니는 챙겼는지, 시차로 잠을 설치지는 않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세심히 안부를 물었다.
미국 단톡방의 동아리 선배들, 그리고 한국의 사랑방 사람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나의 리듬을 알고 내 몸과 마음을 살펴주는 사람들. 그들은 내 삶을 세심히 돌봐주는, 내가 선택한 가족들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의 다정한 품 안에 머무는 듯한 나날이었다. 이만큼의 사랑을 받는데도 몸과 마음이 조금 아프다고 절망한다면, 그건 양심이 너무 없지 않은가. 자기가 가진 걸 모른 채 람보르기니 운전석에 앉아 샤넬백을 내던지며 우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받는다는 건, 선택받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긴 환승 끝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LA 공항의 한 라운지에 들어섰다. 거기서 만난 라틴계 아주머니는 놀랄 만큼 푸근하고 다정했다. 내가 탈진한 걸 눈치챘는지 식사 중에도 더 편한 자리로 옮겨주고, 음식은 입에 맞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재차 물으며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일주일간 샌디에고에 머물며 캘리포니아식 친절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유난스러운 다정함이 참 좋았다. 라운지에서는 따로 팁을 주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아주머니에게 살짝 팁을 건넸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며 팁을 받았다. 한참을 쉰 뒤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시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It was my pleasure to take care of you."
이번 여행 내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행복에 겨워 있었다. 그 느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사람처럼 살았다. 필사적으로 사랑받을 기회를 피해 다니며, 행복보다는 고난이 삶의 의미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리고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그만큼의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는 낡은 믿음이 깔려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벅찬 행복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사랑받을 용기가 없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강렬한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행복을 거머쥔 후 다시 떠나보낼 때의 상실과 공허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문득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세상이 이렇게 나를 보살펴주는 걸까?'
'내게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익숙한 자기 비하가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려고 하는 순간, 옆자리의 승객이 눈에 들어왔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 아기를 안은 엄마가 쩔쩔매고 있었다. 한 손으로 기내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진땀을 빼는 모습이 영 안쓰러웠다. 오지랖인가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건넸다.
"저도 여덟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예요. 괜찮으시면 아기 제게 잠깐 맡기시고, 식사 편하게 하세요."
다 망해가는 전쟁터에서 뜻밖의 아군을 만난 것처럼, 아기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아기를 건네받자 보송한 우유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말랑거리는 한 줌의 작은 아기가 품 안에 포근히 안겼다.
사랑받을 자격을 따지자면, 그 기준에 온전히 들어맞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쩌면 사랑이란, 자격을 묻지 않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흘러들어와 머물다가, 다시 또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것도 움켜쥐려 하지 않고 그저 흐르게 둘 때, 이미 우리는 사랑 속에 있었음을 비로소 느낀다. 그리고 세상의 다정한 온기 속에서 살아난 나는, 이제 그 따스함을 품고 다시 작은 친절로 흘려보낸다. 받은 것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비행기가 착륙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속에는 여전히 샌디에고의 따스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받는 것과 주는 것 사이 어디쯤에서, 물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을.
https://m.youtube.com/watch?v=pX7wj_hbQ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