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정지선 앞에서

아이의 자폐 진단을 마주하며

by 아토

※ 2022년 12월에 쓴 글입니다.


어제저녁, 학회지에서 맡고 있는 칼럼 코너를 위한 인터뷰를 하고 왔다. 아이 밥을 챙겨놓고 나가려니 시간이 꽤 걸려서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인터뷰를 할 선생님은 내가 조금 늦게 가더라도 온화한 마음으로 기다려주실 걸 알았지만, 어쩐지 조급하고 허둥대는 마음으로 운전을 했다. 마음은 조급한데 어쩜 차는 신호마다 걸리는지. 가는 동안 다섯 번 이상 신호 대기선 맨 앞줄에 멈춰 서서 기다렸던 거 같다. 심지어 약속장소 바로 앞에서 다시 정지 신호에 걸렸다.


"왜 나만 신호가 걸리는 거지!" 짜증과 울분이 터져 나오려는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이 왔다. 신호등에 눈이 달려있지도 않을 터, 어떻게 내 차만 보면 갑자기 빨간 불로 바뀌겠는가. 아주 작고 사소한 세상사에도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기 좋아하는 내가, 신호등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는 내게 일어나는 일을 그저 하나의 '우연'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나만은 특별해서 세상의 모든 불행이 비껴가리라 믿었던 그 자의식이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만들고 있었구나... 를 깨달았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 네 살이 되어도 쉽사리 말문은 터지지 않았고, 또 그에 비해 텍스트에 대한 감각은 놀랍도록 뛰어났다. 아이는 혼자서 유튜브로 알파벳과 숫자 영상을 한참 찾아보더니 어느 날 문자 체계의 구조적 패턴을 터득했다. 세 돌도 안 된 아이가 각종 계기판의 숫자들과 간판에 쓰인 글자들을 읽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영재성이 보인다며 빨리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키라고 하였지만, 엄마의 본능으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올해 봄에 처음 소아정신과 병원의 문턱을 밟았고, 지난 8개월간 '정상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없을지 희망을 품으며 숱한 치료센터를 다녔다. 그리고 그저께, 재진을 받으며 결국 문을 열고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심리검사 결과는 우영우 저리 가라 급으로 참담했다. 하지만 호랑이 같았던 여교수님은 따스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앞으로 빛나게 성장할 아이니까, 당장 장애등록을 하기보다는 기다려줍시다." 외래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서야 심리검사 결과지를 자세히 읽을 여유가 생겼다. 나는 얼마간 울었고, 그제서야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결심했다. 순간의 단면을 고착화시켜 현실에 털썩 주저앉지 말고, 상대방의 빛과 가능성을 보며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사람이란 함께 어울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졌기에 이것만은 지키기를 바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세상을 살며 다른 사람을 평가해야 할 때, 언제나 이 말을 잊지 말아라. 사람의 키는 높은 곳으로 잰다. 그 사람의 가장 높고 좋은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을 사귈 때 그것만은 잊지 말아라.

<사막에서 쓴 편지: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 한수산


인터뷰를 했던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댁으로 가는 길에 또 신호에 걸려서 차가 정지선에 섰다. 나는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길에 자꾸 신호에 걸리며 겪었던 마음의 변화를 담담하게 말씀드렸다. 아이의 외래를 보고 온 뒤 며칠간 우울함과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자의식으로 스스로를 더 괴롭히지는 않기로 하였다고. 이게 이 아이의 숙명이라면,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경제적 여유와 심리적 공간을 갖춘 우리에게 태어난 게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나는 목이 메어 얼마간 말을 잇지 못하였고, 선생님도 내게 그런 해탈한 듯한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아파했냐며 한참을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친구에게 주말 내내 아이의 자폐 확진으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얘길 전했다. 친구는 내가 올해 초 소아정신과 외래 초진을 본 뒤에 "이 아이가 자폐가 맞다면 나에게 온 걸 더더욱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다."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며, 그때 그 말에 감명받았었다고 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친구의 말은 깊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불교 신자라 아이가 자기 부모를 택해서 나에게로 온 거라고 믿고 있긴 하지만, 감히 겁도 없이 그런 말을 용감하게 했다니.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이 그때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 불이 다시 초록불로 바뀐다.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목적지인 연희동으로 가려면 뻥 뚫려있는 성산대교 3차선으로 가면 될 것을, 외곽순환도로로 올라가겠다고 꽉 막혀있는 1, 2차선에서 다른 차들과 함께 허둥지둥 줄을 서게 되는 건 아닐까. 외곽순환도로 입구 앞에 다다라서야 "진즉에 옆 차선으로 빠질걸, 남들이 다 서있어서 원래 막히는 길인가 보다 했지!" 하며 나의 바보 같은 선택에 한탄하게 되는 건 아닐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곳에서 줄도 서고, 신호에 걸려서 한참을 멈춰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가던 길 그대로 가면 된다.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녀는 따스한 표정으로 목적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너의 세계. 엄마는 글로, 너는 도면으로.


※ 이 글을 쓴 지도 만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이는 그 사이 참 많이 자랐고, 덩달아 저도 많이 자랐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제가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저와 너무 다른 돌연변이 별종이 아니었고,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품은 존재였음을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깨닫습니다.


신호등 초록불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꼭 손을 들고 건너는 아이를 보며, 제 안에도 있던 융통성 없음이 올곧음으로 바뀌어갑니다. 하루 종일 도면 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를 보며 자폐적 성향이 덮고 있는 깊은 몰입의 순간을 봅니다. "배관공이든, 건축가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 돼."라고 아이에게 말하며 저 자신에게도 논문 대신 에세이를 쓰고, 실험 대신 명상을 해도 된다며 스스로를 다정하게 다독여줍니다.


앞으로도 신호등은 몇 번이나 빨간불로 바뀌겠지요.

그때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서로의 손을 다시 꼬옥 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함께 걸어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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