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다림에서 살아나감으로

by 아토

독감으로 한참을 앓고 난 뒤, 보름 만에 무용 학원에 갔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닌데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한 번만 더 빠지면 정말 기부천사가 될 것 같다는 위기감에 꾸역꾸역 학원으로 향했다. 연습실 한가운데서 원장님이 홀로 몸을 풀고 계셨다. ‘아싸, 그동안 기부했던 학원비를 오늘 단독 강의로 돌려받는구나.’ 유치하지만 솔직한 기쁨이 스쳤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원장님 안무를 힐끔거리며 따라 하는데, 갑자기 말씀하셨다.

“저 말고 본인의 몸을 바라보세요. 척추선이 어떻게 휘는지, 목과 어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기 몸을 봐야 해요.




나는 오래도록 바깥에서 답을 구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이 돈이나 명예, 근사한 외양을 좇을 때 나는 사랑과 진리를 추구하기에 결이 다르다고 은근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한동안은 학문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공학과 심리학을 거쳐 의학에 이르기까지 헤매는 동안 나는 학위 부자가 되었고, 한두 권씩 모아 온 천여 권의 책들로 온 집안이 가득 찼다. 하지만 내면의 결핍감과 공허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최고의 일을 찾는 게 답이 아니었다면 최고의 만남이 답일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세상 속 사람들 사이를 끝없이 돌아다녔다. 여행 중 아름다운 이들을 많이 만났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오히려 말이 없는 자리에서 연민과 돌봄의 모습으로 피어남을 배웠다. 마주 보는 따스한 시선 속에서 시들어가던 식물에 물을 주듯, 사람도 생기 넘치게 피어오를 수 있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생동감조차도 일시적이었다. 함께 있음이라는 조건이 사라진 뒤에는 더욱 어두운 영혼의 밤이 찾아왔다. 아둔한 나는 산 정상에 다다라서야 산 정상이 내게는 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십 년 전부터 지도 스님이 누누이 하시던 말씀이 그제야 또렷하게 떠올랐다.

“답을 결코 밖에서 구하지 말고, 내면에서 찾아라. 명색이 수행한다는 애가 남 탓을 하면 되겠니?”


나는 강남 아파트가 아니라 학문적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잘생긴 부자가 아니라 진실된 만남을 추구하기 때문에, 답을 내면에서 찾고 있다고 단단히 착각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대상만 교묘하게 바꿔가며, ‘무언가를 구하고 있는 행위’ 자체는 계속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다시 거울 앞이다. 원장님을 따라 어설프게 동작을 해본다.

“못해도 괜찮아요. 잘하는 양 움직이세요. 턱을 들고 도도하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러워져요.”


세 달 가까이 나는 원장님 몸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따라 했는데, 처음으로 거울 속 내 몸을 바라보며 내 안에서 흐르는 감각을 느껴본다. 처음으로 음악을 바꿔달라고 요구도 했다.


“원장님. 지금 노래는 저한테 너무 빨라요. 아까 혼자 몸 푸실 때 나오던 노래 틀어주세요. Lisa Lovbrand의 No Maybes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인데 그걸 틀고 계셔서 놀랐어요.”


바르게 서서 양 무릎을 바깥쪽으로 굽혔다가 편다. 고관절에서 가볍게 ‘뚝’ 소리가 난다. 팔을 좌우로 쭉 펴 비행하듯 나선형을 그린다. 늘씬한 팔 대신 바짝 긴장한 승모근이 올라오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내 발은 엇박이 되었다가 정박이 되었다가, 도무지 어설프다. 엇박 몇 번에 어느새 원장님과 두 박자 넘게 어긋났지만, 그래도 ‘잘하는 양’ 마음만은 최고의 무용수가 되어서 함께 동시에 턴도 해본다. 두 바퀴 반을 돌자 세상이 잠시 기울고, 나는 휘청이다가 원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서로 한참을 웃는다. 기본 동작을 뚝딱대며 따라 할 때와 달리, 자기 흐름으로 춤출 때는 왜 이렇게 잘하냐며 뜻밖의 칭찬도 듣는다. 앞으로 자주 나와서 동작을 하나씩 익히다 보면, 언젠가 자기만의 안무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격려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2013년부터 낮에는 의학 공부에 매진하고, 밤에는 명상을 하는 주경야독의 이중생활을 이어왔다. 깨달음을 다 얻은 뒤에 아주 맑고 명료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었다. 대략 오십 즈음이 되면 복잡했던 내면도 정리되고 덩달아 바깥의 복잡한 삶도 정리될 거라 막연하게 믿었다. 그때 세간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티베트로 떠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주변에 종종 했다. 마치 깨달음이 티베트 어느 사원의 서랍장 안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는 것 마냥. 십 년 후에 다다를 산 정상만을 바라보며, 산 정상에 다다르는 나의 과정은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이 시간을 기다림이 아닌 '살아나감'으로, 이 소중한 일상을 황금빛으로 채워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시선의 방향을 드디어 내면으로 돌린 사람이, 이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철저하게 탐구하고 경험하여 어설프게나마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두려움 속에 용기가 있고, 죄책 속에 용서가 있고, 미움 속에 사랑이 있는 이 광대무변한 마음을 하나씩 직접 들여다보려 한다. 놓아버림이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거머쥔 손에서 스르르 흘러나가는 감각으로 다가오기를.



그러나 비록 목표에 도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중에도 글 쓰는 일이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기꺼이 책상 앞에 앉을 것 같습니다. 비록 산 정상에서의 기도만이 나의 의미가 아니라, 비록 산을 되돌아 내려오더라도 힘겹게 걷는 그 길 역시 기쁨입니다.

<무빙>이란 드라마의 다방 아가씨를 사랑하는 구룡포(류승룡)는 모든 무협지는 결국 로맨스 소설이라는 대사가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결국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결말이 나기 때문에 결국 로맨스 소설이라는 겁니다. 글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드라마에서 그는 예쁜 딸을 얻었지요.

길은 모든 걸 기억합니다. 넘어진 것도 일어선 것도.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 길이 가르쳐 줍니다. 스스로 믿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늦었지만 지금 나선 그 길을 천천히 마음껏 여행해 보세요. 그 어딘가 어느 독자는 작가의 마음에 감동할 것이며, 작가를 응원할 겁니다. 그 이름 모를 독자를 위해서라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https://www.youtube.com/watch?v=s2PA3TTy0q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