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두 개의 그늘
※ 2023년 8월, 아이와 전쟁기념관에 다녀온 뒤 기록해 두었던 글입니다.
헬리콥터에 푹 빠진 아이를 위해 이번 주말에는 전쟁기념관에 왔다. 폭염 속에서 아이가 땀을 줄줄 흘리며 야외 전시장에 있는 헬리콥터를 한참 보고 있길래, 이제 시원한 실내 전시장으로 들어가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애가 바닥에 드러누워 한참을 울었다. 차디찬 전시관의 돌바닥 위에 누워 가까스로 진정을 한 아이를 데리고 겨우 군용차 몇 대를 보여주었다. 이후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전쟁기념관 바로 앞 중식당으로 왔다. 평소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과 짜장면으로 달래준 뒤, 이제 뭐 할까 물어보니 다시 전쟁기념관으로 가잔다. 헬리콥터를 실컷 못 보았다며, 이번엔 야외전시관만 갈 거란다. "하루에 전쟁기념관을 두 번이나 가게 되다니..." 차라리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시원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막무가내라 결국 헬리콥터를 다시 보러 돌아왔다.
아이를 헬리콥터 앞에 놓아두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숲속 쉼터로 기어들어왔다.
벤치가 둥그렇게 열 개 남짓 놓여있고 주변에 굵직한 나무들이 둘러싼 공간인데 제법 숲의 모양새를 갖췄다. 학부 시절 윤동주 시비가 있는 공간이 꼭 이런 모습이었는데, 들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때면 나는 꼭 작은 숲속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달래곤 했다. 숲은 언제 와도 좋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나름의 정취가 있다. 귀를 가득 채운 풀벌레 소리와 코끝을 간지럽히는 풀과 흙내음, 그리고 눈앞을 가득 채우는 초록빛 풍경이 내 마음을 잠재운다. 늘 이리저리 생각에 끄달리느라 정신없는 내 마음을 온전히 쉬게 한다.
헬리콥터 앞을 떠나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 앞에 수많은 선택지들이 놓여있을 때 무조건 휴양림을 택하는 그 마음처럼 아이에게도 헬리콥터가 그런 존재일 수 있겠다. 비록 얕더라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시켜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라면, 사실 아이의 행복은 늘 만나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안심시켜 주는 숲속 헬리콥터 안에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