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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데아 Jun 08. 2018

집단 따돌림,
왕따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나는 아직도 사람이 어려워

혹시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한 경험이 있나요?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무리에서 떨어져나가
혼자가되어버리는 그런 일.
여기 ㅂ씨는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집단따돌림의 기억이
아직도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20여년전 일이 아직도 아프다는 ㅂ씨
집단따돌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버렸는지
ㅂ씨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왕따가 시작된 그날, 

-언제 왕따를 당한 거야?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이 있었어. 체육시간이었는데, 내가 물통 가지러 잠깐 교실에 들렀는데 걔네가 애들 책가방을 뒤지면서 물건 훔치는거야. 그때 내가 문을 벌컥 열어서 "너네 뭐해? 왜 가방을 뒤져?"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걔네가 "우리가 뭘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면서도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근데 내가 말했고 따돌림이 시작됐어."


-따돌림이 시작됐다는 건 어떤 상황인 거야?

"하루아침에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더라. 선생님한테 말하고 난 다음날 학교를 갔는데 아무도 정말 아무도 말도 안 걸고 쳐다도 안 보는 거야. 투명인간이 됐지. 어떤 애가 말해줬는데 도둑질하는걸 내가 선생님한테 말한 뒤에, 나랑은 놀지 말라고 했대. 말 걸지도 말고. 안 그러면 네가 왕따 당할 거라고."


-그때 마음이 어땠어?

"진짜 옛날이잖아. 내가 벌써 30대니까. 그 당시 반 친구나, 나를 왕따 시켰던 애들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 근데 그때의 감정은 생생해. 정말 복잡해. 슬프고, 배신감에 치도 떨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굴욕감도 들고. 주변 어른들한테 말해도 아무도 안 도와주니까 고독하고 절망스럽고."


-어른들한테 말했는데도 도움이 안 됐어?

"어른이라고 하면 선생님이겠지? 선생님도 알고 있었어. 내가 일기에 써서 냈거든. 그런데 그 선생님이 반 애들 앞에서 우리 반에 왕따 당하는 애가 있는데 "너네 그러면 안된다" 이러고 말았어. 근데 상황이 더 악화된 거야. 그냥 방관하고 있던 애들도 본인들이 선생님한테 나쁜 애들이 된 거니까. 나를 더 싫어하게 된 것 같았어. 결국 그 선생님은 그렇게 반 애들한테 한마디 하고 끝이었어."


-정말 힘들었겠다.

"응. 진짜 그 때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무슨 글만 쓰면 온통 욕이고 죽이고 싶다 이런 것 밖에 없고. 그때 심리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거지. 특히 수학여행 갔을 때 혼자 버스에 앉아 있는데, 진짜 죽고 싶었어. 선생들은 신경도 안 써. 내가 버스에 앉아 있는데 응~ 앉아 있구나 하고 나가더라고. 또 밥 먹을 때도 혼자 먹어야 되니까, 안 먹고 굶어 버리고. 한 번은 혼자 매점을 갔는데, 아는 언니가 야 너 왕따지? 맨날 혼자 다니네. 쪽팔린다. 아는 척하지 마 이런 식으로 말한 거야. 그때 이후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뚝하고 끊어져버린 것 같아."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어


-중학교 때는 어땠어? 상황이 좀 나아졌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따돌림 없이 잘 지냈어. 좋은 친구들 만나서. 그 친구들도 내가 왕따를 당했다는 건 들은 것 같은데, 나한테 티 안 내고 잘 놀았어. 초등학교를 우울하게 졸업해서 그런가. 중학교 고등학교는 학교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 


-그래도 다행이야! 즐거운 학교 생활을 보내서. 그 이후도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했어.

"뭐랄까? 그 이후에는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참 어릴 때 일인데, 그 일 이후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졌고, 회복되지를 않아. 나는 사람을 깊게 사귀지 못해."


-그 사람이 널 배신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야?

"나한테 그냥 사람은 믿으면 안 되는 존재였어.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가 편하기보다 불안한 거야. 얘랑 멀어지면 어쩌나,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면서  눈치를 보게 되더라. 상처받기 싫으니까. 상대도 나의 이런 태도를 느끼게 되잖아. 그럼 둘 중하나였어. 나랑 멀어지던가, 아니면 나를 굉장히 쉽게 보고 함부로 행동하던가."


-어린 시절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구나.

"응. 나는 사람을 사귈 때 편하게 다가가. 상대에게 맞춰주고 이해하려 해. 근데 이게 원래 내 성격이기보다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는 행동이거든. 가짜로 웃는거지. 그 사람한테 좋게 평가받고 싶어서. 그래서 주변에서는 나보고 착하다고 하는데, 지내다 보면 그 착함이 너는 바보야 호구야 이렇게 돌아오더라고. 그러다 보니 관계가 깊어지기도 전에 그냥 내가 멀어져. 너무 힘드니까. 아니면 깊은 관계가 되었을 때도,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그래서 지금도 친구가 많이 없어."


-맞아. 너 성격 좋다는 얘기 많이 듣잖아.

"성격이 좋다는 게, 뭐 배려심이 많고 재미있다가 아니라, 너 되게 만만해 이걸 성격 좋다로 포장해서 말하는 것 같아. 내 피해의식일 수도 있는데, 그동안 내가 상대를 많이 맞춰주니까 나를 착하다고 말하면서 하대하더라고. 잘 모르겠어. 상대가 착한 친구면 본인도 착한 친구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착한 친구 두면 좋아하면서, 정작 본인은 착하게 행동하지 않더라."


-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예를 들어 약속시간에 친구가 늦었어. 10분도 아니고 뭐 1시간 이렇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처음으로 화를 냈어 . 그랬더니 "너라면 그래도 되는지 알았다"이러더라고. 그 친구는 내가 남들에게 '착하다'는 말 듣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거 알고 있었거든. 근데도 나한테 네가 착해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그런 거지. 많이 속상했지. 아무튼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많이 했어. 그래서 나도 받아들였지. 근데 또 그런 일이  반복된 거야. 그 날 집에 와서 걔의 모든 것을 내 인생에서 지웠어.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냥 호구였었나보다 싶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응. 속상하지. 그나마 깊은 관계를 맺은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제일 꺼려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태도로 나를 봐왔다는 거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를 정말 아예 바꿔버렸어. 굳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을 거라고. 모두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되고,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친구, 굳이 없어도 괜찮아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거야?

"아니. 사람이 싫고 무섭고 이런 건 아니야. 그동안 사람한테 너무 지쳤거든. 잘 보이려고 애쓰는데 쓴 에너지가 너무 많아. 그래서 요즘은 사람도 새로 사귀려고 하지도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그냥 가볍게, 오늘만 볼 사람 정도로만 여기고 흘려보내.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고, 나를 돌보지 못했어. 그래서 요즘은 정말 나에게만 집중해. 나를 최고로 여기고, 나만 제일 아끼고 이런 마음으로 살아. 그동안은 상대방과 나 사이의 중심이 모두 상대방에게만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그 중심이 중간으로 오고 있다 느낌이야.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삶을 사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더 쉬워졌어. 상대방한테 전전긍긍하지 않고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든."


-점점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내가 이렇게 인간관계를 다시 재정립하기까지 나는 무려 15년이 넘는 시간을 싸웠어. 그 시간 동안 사람들한테 다치고, 내가 나를 상처 주고.  나는 지금 사람한테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마음이 좀 사라지고 나면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싶겠지? 근데 지금은 그냥 나한테 그동안 사람 때문에 힘들었으니까, 좀 쉬라고 해주고 싶어."

학교 폭력, 제발 관심 좀 가져줘


-학교 폭력에 굉장히 민감할 것 같아.

"응, 정말 그래. 왜냐하면 그 따돌림이 나의 성격, 인간관 전부를 바꿔 놓았잖아. 근데 미디어나 주변에서 나보다 더 심한 따돌림을 당한 사람을 보면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속상해. 안타깝다, 어쩌냐 이게 아니라 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지금 많이 힘들겠다 이렇게. 내가 겨우 저 정도 왕따로도 이런 영향을 받았는데, 저 사람은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제일 큰 방법은 무엇인 것 같아?

"내 경험에서는 사실 학교 폭력은 어른이 개입해도 안 되는 것 같아. 그건 아이들의 세계라서, 어른들이 조정할 수 없는 곳이라고 보거든. 그래서 아이들 전체를 불러두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자존감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방법이 제일 큰 것 같아. 스스로 자신을 버리지 않게. 옆에서 그 친구한테 계속 괜찮다고, 잘 버티자고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누가 그렇게 해줬으면 진짜 힘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거지?

"응. 낮은 자존감으로 살다 보면 정말 사람 자체가 매력이 없는 존재로 변하더라. 그러면 그럴수록 정말 죽고 싶어 지거든, 그래서 그 상황에서는 오로지 그 친구한테만 집중해서 도와줬으면 좋겠어. 물론 학교 폭력을 조장하는 애들을 교화시키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건 누구 한 명 나선다고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 해결하려는 동시에 왕따 당하는 친구한테 많은 관심을 줬으면 좋겠어. 친구를 사귀어라, 밝게 살아라 이런 거 말고. 좋아하는 거 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고."


-혹시 지금 힘들어하고 있을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어?

"음.. 잘 모르겠어. 어떤 말을 해도 아무것도 안 들릴 테니까. 왕따가 되면 그냥 외롭거든. 정말 뼈가 시리게 외로워. 그래서 그냥 시간을 잘 버티라고 해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잘 버틴 사람들한테도 대견하다고 해주고 싶어. 그 과정 속에서 뭐라도 하라고 말하고 싶어. 좋아하는걸 진짜 열심히 하거나, 좋아하는 게 없으면 그냥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그렇게 학교 외에서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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