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부인이 부리고 칭찬은 남편이 받아가네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인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노는 것을 좋아한다.
신혼생활을 시작했으니, 집들이도 계획했고 친구들을 부를 생각에 들떠있었다. 남편이 집들이 음식을 나에게 떠맞기기 전까지 말이다.
친구가 많은 남편은 집들이 예약만 8번을 했다. 그리고 "집들이 음식 뭐 해줄 거야?"라고 물었다.
남편의 말에 집들이에 대한 기쁨은 엄청난 부담으로 바뀌었다. 남편의 태도에는 친구들에게 요리 잘하는 부인을 둔 것을 칭찬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동시에 음식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생각이 있었다.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는 부인이 되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뒤졌다. 집들이 음식, 신혼 음식 등을 검색하면서 메모까지 했다. 일하는 틈틈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과 내 친구들의 집들이를 몇 번 마쳤다.
그러던 중 앞으로 있을 또다른 집들이 음식을 물어보는 남편의 질문에 '나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남편, 집들이 음식 뭐할 거야?"라고 물었다. 남편은 다시 나에게 "그래서 뭐할 건데?" 라고 물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당연히 음식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태도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 친구 집들이 요리는 남편이 하고 나는 옆에서 많이 도와주겠다고 선언했다.
요리를 여자가 하고 위상과 인정은 남자가 챙기는 건 우리네 부모님들 시대에서나 통용되던 것 아닌가? 대게 집들이를 하면 우리 엄마는 열명이 넘는 손님의 음식을 부지런히 차려냈다. 도착한 손님들이 엄마에게 '정말 고생하셨겠어요'라고 하면 우리 아빠는 '아니, 고생은 무슨! 그냥 차린 거지라고' 손사래 쳤다. 식사를 시작하면 손님들은 아빠에게 '안사람을 정말 잘 두셨다' 면서 엄마를 칭찬하는 척 아빠를 치켜세웠다. 모두가 돌아간 뒤, 아빠는 엄마에게 고생했다는 한마디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엄마는 남은 설거지를 묵묵히 해냈다.
우리 남편도 이런 걸 보고 자랐으니 나에게 이와 비슷한 상황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우리네 엄마들처럼 집안일에 그리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사회생활이지, 집안일은 별 의미 없는 일상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나한테 요리에 대한 칭찬으로 본인의 기를 세우려는 남편의 생각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나 역시 순간적으로 남편의 기를 살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를 해냈다.
내가 왜 그랬지?
그날의 집들이는 정말로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은 자신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내가 떠안았던 그 고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딱히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다. 그럼에도 남편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는 것 그뿐인데.
그날 집들이의 메인 요리는 에어프라이기 고기구이가 됐다. 그리고 남편은 부인이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칭찬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나를 치켜세웠다. 전혀 안 그래도 되는데. 집들이는 여자가 해야 한다는 그 공식을 남편은 깨기가 어려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