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데아 Mar 04. 2018

서른, 워너원 덕질을 시작했다

"워너원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ㅂ씨는 최근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팬 생활을 시작했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나"

이 노래 한 번쯤 들어봤죠? 바로 아이돌 워너원의 곡인데요.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서 팬들의 투표를 통해 만들어진 그룹인데, 최근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요.

비현실적인 외모를 겸비하고 멋있는 퍼포먼스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워너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올해 서른이 된 ㅂ씨. 그녀 역시 워너원에 빠져 최근 '덕밍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ㅂ씨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돌을 좋아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심오하고 깊은 취미였습니다.
워너원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는 ㅂ씨, 그녀의 생애 첫 '덕질'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PART1. 워너원에 빠지다


-안녕하세요.  최근 워너원이라는 아이돌 그룹에 푹 빠져 있다고요? 

"네.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인데요. 요즘 제가 이 그룹에 빠져서 콘서트, 팬 사인회, 팬미팅, 굿즈(아이돌과 관련된 용품) 모으기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


-혹시 예전에도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팬 생활을 했었나요?

"아니에요. 제가 예전에 이승기 씨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요. 그냥 이승기 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정도였어요. 그분을 보기 위해서 어딜 가거나, 물건을 사거나 이런 적은 없었어요."


-오, 그런가요? 왠지 과거에도 적극적인 팬이었을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어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나요?

"워너원 그룹이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되게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있었어요. 어디에서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게 된 워너원이 너무 큰 위로가 되는 거예요. 워너원이 현실에서 저의 탈출구가 되어 줬다고 할까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힘이 났어요. 그때부터 워너원이 저에게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어요."


-ㅂ씨가 힘든 시기와 워너원의 활동 시기가 겹치면서 그들에게 푹 빠진 거네요. 그럼 워너원은 어떻게  알게 됐고, 또 그들에게 빠지게 된 거예요?

"사촌 동생이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걸 봤어요. 사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시즌2인데, 저는 시즌1도 안 봤거든요. 동생이 너무 재밌다고 하는데도 저는 안 봤어요. 근데 우리 고모도 이 프로그램이 재밌다고 보시는 거예요. 고모가 나이도 많으신데. 그래서 저도 궁금해서 한 편을 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러고 나서 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들의 사진을 보내줬고, 거기서 박지훈 씨를 보고 반하게 됐어요."

PART 1. 입덕 부정기와 덕통 사고

-그때부터 적극적인 팬이 되기 시작한 건가요?

"아니에요. 팬 활동을 해본 경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거든요. 흔히 팬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를 입덕 부정기라고 불러요. 입덕 부정기는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는 시기예요. 뭐랄까?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제가 덕후(한 가지에 집착하는 마니아)가 된 것 같고 남이 보는 시선도 안 좋을 것 같아서요. 사진 저장하는 것조차도 꺼렸어요. 괜히 너 이 사진 왜 가지고 있냐고 뭐라고 할 것 같고. "


-아, 내가 이 가수를 좋아하는 감정을 부정하는 시기? 이런 거라는 거죠.

"네. 그런데 입덕 부정기 시기에도 계속 프로듀스 101에 대한 정보를 찾고 멤버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프로듀스 101의 직캠을 보고 '덕통 사고'를 당했어요. 프로듀스 101에서 연습생들이 공연한 영상을 직접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걸 직캠이라고 해요.  근데 어느 순간 제가 이걸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직캠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 난 빠졌다. 인정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걸 덕통 사고라고 불러요. 교통사고에 비유한 건데 특정 연예인에게 빠지게 된 순간을 그렇게 불러요."


-어떤 점이 그렇게 워너원에 빠져들게 했었나요? 프로듀스 101이 타 프로그램과 다른 특별함 그런 게 있었나요?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은 내가 마음에 드는 개인 멤버를 선택하는 거예요. 이 중에서 나의 '최애 픽(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투표로 고르는 것)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성공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프로듀스 101의 가장 큰 특징이 투표로 내가 좋아하는 연습생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투표라는 매개체가 ㅂ씨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팬으로 만든 건가요? 투표가 없었다면 예전처럼 티브이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팬이 되었을까요?

"저는 원래 게으른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방관하는 성격이에요. 게으른 저를 투표하게 만든 건 박지훈 씨 그 자체예요. 투표가 박지훈 씨를 더 좋아하게 만든 건 아니에요. 이 분한테 빠진 게 먼저고, 투표는 그 후예요."


-왜 박지훈 씨가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였을 때, ㅂ씨의 마음을 흔든 것인가요?

"다른 멤버들도 다 잘생기고 멋있어요. 처음에는 박지훈 씨가 너무 어려서 별로 매력을 못 느꼈어요. 박지훈 씨가 윙크하는 모습을 봤었는데 굉장히 앳되게 생겼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프로듀스 101을 보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매우 성실하고 겸손해 보였어요! 박지훈 씨가 애기때부터 뮤지컬도 하고 연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했거든요. 열심히 살아온 과정이 다 보여서 좋았어요. 물론 잘생긴 외모에 춤도 잘 춰서 더 좋아요. 어린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까 호감도 가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많이 하는 분인데요? 저는 박지훈 씨에 대해 잘 모르니까 설명해주세요.

"아이돌은 팬의 관심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본인을 더 좋아하게 만들려고 신경 써서 행동해요. 예를 들어서 한번 티브이 화면에 잡히기 위해서 수십 번의 윙크를 날리고, 또 스스로 꽃가루를 뿌려서 더 좋은 화면을 만들기도 하고요. 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워너원을 더 좋아할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한다고 했던 인터뷰를 보면서도 나이는 어리지만 속은 정말 깊구나 이렇게 느꼈어요."

PART 2. 덕밍 아웃, 워너블이 되다


-평소 덕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옛날에는 다른 사람들이 특정 가수의 팬 덕질을 보면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근데 막상 지금 해보니까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내가 애정이 가는 사람들이라서 가족이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ㅂ씨의 팬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게 부모님일 텐데,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부모님은 얘네를 좋아하면 밥을 주냐 돈을 주냐 그러죠(웃음) 근데 별로 신경 안 쓰세요. 아, 제가 너무 어린 남성에게 끌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한 적은 있어요. 그리고.. 팬미팅이나 콘서트에 당첨되기 위해서 커피나 초콜릿 같은걸 많이 사가잖아요. 그럼 누가 너한테 이런 거 사라고 강요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신 적도 있고요(웃음). 근데 최근에는 엄마도 좋아하는 최애 픽이 생겼어요. 라이관린이라는 멤버인데요. 워너원이 티브이에 나오면 저한테 전화해요 얘네 나왔다 이러고 알려주세요."


-내가 직접 뽑은 아티스트가 이렇게 유명해지니까 기분이 어때요?

"내가 이 사람을 연습생 초반부터 키워온, 혹은 지켜온 사람이라고 생각이 돼서 더 정이 가요. 데뷔 콘서트 때는 만감이 교차하고 엄청 떨렸어요. 내가 지지했던 아티스트들이 데뷔를 한 거니까, 무대는 잘할 수 있을지 노래는 잘 나왔을지 등등 엄청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됐어요."


-신기하네요. 자식 키우는 엄마 마음처럼 생각하면 될까요? 어떤 팬들은 연애하는 기분으로 덕질 한다고도 하는데, 이런 마음은 안 들어요? 박지훈 씨랑 만나보고 싶다 하는 로망이요.

"박지훈 씨한테 이성적인 매력이 안 느껴진다면 거짓말이죠. 이게 복잡한데, 그렇다고 남자로만 보는 연애 감정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기엔 너무 어리죠(웃음). 저는 워너원을 키워주는 마음이었어요. 워너원을 모성애로 본다고 할까요. 이 그룹을 키워내는 힘을 쓴 일원이 된 느낌으로 팬 생활을 하는 거지, 연애감정 이런 건 아니에요. "

PART 3. 나이 서른, 경제력이 뒷받침된 덕후를 막을 수 없다


-엄마 마음 그레잇이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워너원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ㅂ씨의 팬 활동도 막을 올렸을 것 같은데요. 팬 활동 얼마나 열심히 하고 계시나요?

"일단.. 워너원 굿즈를 많이 샀어요. 워너원 얼굴이 새겨진 다이어리, 달력, 응원봉, 가방 등등이요. 그리고 팬사인회와 콘서트는 무조건 가려고 해요. 실제로 팬사인회에 응모했는데 두 번 다 당첨이 된 거예요. 그래서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콘서트는 4번을 다녀왔는데, 몇 번은 콘서트 티켓이 없어서 암표를 주고 갔다 왔어요. 워너원이 기간을 한정해두고 활동하는 그룹이다 보니, 암표도 최대 100만 원까지 팔거든요.  그 정도 준건 아닌데 그래도 가고 싶어서 큰돈 주고 다녀왔어요."


-우와, 팬 생활도 엄청 많은 경제력이 필요하네요.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에.

"그런 생각은 많이 안 들어요. 친구들 만나서 밥 먹고 카페 가도 2~3만 원은 금방 쓰잖아요. 그런 돈을 아껴서 워너원에 쓰는 거예요. 첫 팬 사인회에 갈 때는 커피를 사서 거기서 나온 스티커를 응모해서 당첨되면 가는 거였어요. 그래서 월, 수, 금 이렇게 나눠서 하루에 2만 원 정도 커피를 사서 스티커를 모으고 그랬어요. 스스로 절제하면서 다른 사람이 취미에 쓰는 돈만큼 쓴다고 생각해요. 물론 콘서트 암표는 조금 부담스럽지만요."


-하긴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취미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별날 일도 아닌데요.  좀 궁금한 게요. 저는 퍼즐, 독서가 취미예요. 퍼즐은 마지막 조각을 맞출 때 완성했다는 성취감, 독서는 책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 이런 게 있거든요. 근데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어디서 만족감을 얻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완성도가 없을 것 같은데, 스스로 어떤 성취감이 있어서 이렇게 끝없이 투자를 하는 거예요?

"팬 생활이 사실 무조건적으로 워너원만을 위한 건 아니에요. 저는 워너원의 공연, 노래 등에서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어요. 그리고 연예계는 인기가 많을수록 더 좋은 공연과 노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서포트를 해주면 더 질이 좋은 음악과 퍼포먼스가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이건 저에게도 매우 좋은 거죠."


-그래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데 팬 생활에서 만족감이 오나요? 그 아티스트와 친해지고 이러면 더욱 만족감이 커질 것 같은데

"'성덕'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인데요, 아이돌이 특정 팬을 알아봐 줄 때 그렇게 불러요. 그래서 저도 성덕이 되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티스트들의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행동을 해서 나를 기억해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정도가 되면 사생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직접 보면 좋겠지만 저는 그들이 주는 노래와 영상만으로도 행복을 느껴요. 또 더 좋은 노래가 나올수록 그 행복감은 커지고요."


-팬들이 활동하다 보면 다른 아이돌 그룹의 팬들과 경쟁하거나 이런 거 없어요? 옛날에 H.O.T나 god 이럴 때 팬덤끼리 경쟁 되게 심했는데.

"음.. 한국은 쟁쟁한 아이돌 그룹이 많아서 경쟁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워너원을 상 받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하거든요. 우리가 투자를 많이 해야 워너원이 꽃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거요.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돈길만 걷게 해줄게'이래요. 또 워너원 방송할 때 가서 응원하고 그러면 팬들도 우쭐해져요. 뽕을 찬다고 해요. 어깨가 으쓱해지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이만큼 인기 있고 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걸 신경쓰기는해요. "


-처음에 팬 활동 시작할 때는 사진 저장하는 것 까지 신경 썼다고 했잖아요.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거예요?

"아무래도 나이가 좀 신경 쓰였어요. 올해 서른이 됐는데요. 너 그 나이에 그게 뭐냐, 그러니까 남자 친구가 없다 그래서 결혼을 못한다 등등 이런 말을 들을까 봐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근데 막상 아이돌을 적극적으로 좋아하기로 마음먹으니까, 일종의 취미라고 생각이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취미처럼 나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들 시선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그럼 처음에 콘서트, 팬미팅 갔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어요? 왜인지 그 공간은 어린 친구들이 엄청 많을 것 같은데요. 나이 차이 많이 나고 그러면 괜히 위축되잖아요.

"맞아요. 어린 친구들이 진짜 많아요. 근데 그만큼 직장인도 많아요. 처음에 데뷔 콘서트 갈 때는 선글라스 끼고 갔어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처음 시작한 팬 활동이라 떨리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에 혼자 온 직장인들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워너원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 공간에 있는 거라서,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곳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분들도 있고요."


-하긴, 다른 취미와는 다르게 아이돌에 투자하는 취미는 사회적으로 좀 어린 사람이 한다는 편견이나, 의미 없는 일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ㅂ씨는 다른 사람들 시선을 극복하고 이렇게 활발하는 모습을 보니 멋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서른이 넘은 덕후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덕질이라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도 아닌데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당당하게 말하고 또 표현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취미고, 취미는 나이와 상관없어요. 오히려 경제력이 뒷받침 된 우리 같은 덕후들은 더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팬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 할 거 행복하게 덕질 합시다(웃음)."


매거진의 이전글 야근 강요하는 사회 속 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