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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Sep 09. 2017

[현상유감]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다자의 책임 : 진부한 말이지만 필요한 시각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인 ‘정체감 형성’ 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청소년들의 정체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타자들이 교사와 학부모에 국한되어 있었다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복잡하다. 청소년의 자아정체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양상인데, 전통적인 청소년 ‘계도’의 지위를 가진 교사나 학부모층은 그러한 세계의 존재에 대해, 그 세계에 대해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란 명제 및 당면과제에 대한 다양한 논리와 변수들이 영향력을 얻어가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기존의 규범 안으로 품어 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규범에 고착된 기성세대와 그 밖에서 혼란을 경험하는 아이들. 교사와 학부모들의 무지 속에 청소년 집단 안에서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따르는 집단과 그렇지 않는 집단이 부딪히며 충돌한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신체 발육상태가 좋아졌다고, 정신적으로도 조숙하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주거환경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면서 확실히 아이들의 몸은 거대해지고 비대해졌다. 각종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정신과 지적능력의 팽창도 동반되었다. 그러나 과연 총량적인 것에서 정량적인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성숙, 균형이 부재한 틈으로 정신과 정서의 균열과 붕괴가 도래했다.


(...)


1. 처벌의 강도를 가중시켜 학습효과, 교정효과를 도모한다.


처벌, 구형이란,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최대한 격리, 배제하여 나머지,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조처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르게 해석하면,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미 국내 사법제도 안에서 처벌을 강화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예컨대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서 보여진 것 같은 범행의 잔인성, 남학생도 아닌 여중생이, 그것도 2차 범죄, 형량을 고려해가며 (선배에게 문자, “이 정도면 나 들어가?”) 폭행의 수위를 저울질 했다는 점에서 나타나는 지능적인 ‘극악무도’함을 감안하면, 나이 요소를 감안한다해도 충분히 예외적인, 또는 유동적인 형량의 구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조건 감옥에 집어 넣는 것이 능사인가. 국내 전과자들의 재범율은 비교적 높은 편으로 성인 교도소 출소자의 평균 재범률은 22% 로 집계되고 있다(2016). 2006년 통계에 의하면 (최근 통계자료를 못 찾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 청소년 재소자의 56.8%, 청소년기에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 수용된 경험이 있는 성인 재소자의 77.8%가 재범의 기록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교도소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교화‘ 기능이 정상작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교화 행정의 후진성에 대해선 제도적 한계를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의의 여지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2. 범죄, 처벌의 처리과정


범죄의 가해자로서 청소년은 먼저 보호관찰의 대상이 된다. 첫 번째 취해지는 법적 조치이다. 보호관찰사와 정기적 면담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한 교화와 추가 범죄에 대한 예방이 이뤄진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청소년의 경우 1차 범죄 즉 노래방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보호관찰대상이 되었다. 법무부 관할 업무에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이 과정에서 충분한 ‘선도’ 작업 내지는 ‘관찰’ 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후 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전국민이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으로 목도하게 된 2차 가해를 가한 후 ‘경찰’ 에 자수했다고 하는데 당시 경찰은 이들이 보호관찰의 대상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동급생에 대한 무지막지한 폭행을 저지른 후 ‘본인들의 잘못을 깨달아 경찰서로 와서 자수한 어리버리’ 중학생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경찰은 이들을 바로 훈방조치 했다. 보호관찰관은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수행했던 걸까. 이들의 동선이나 행적을 세밀히 파악 또는 관찰하고 있었는가. 그러한 틈새에서 또 다른 범죄로의 실마리가 연결된 것이다. 2차 범죄는 충분히 예방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3. “예방”


행정처리상의 문제가 다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형량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청소년 재소자들과 다년간의 면담과 상담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해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처벌’의 방식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고통을 절감하고 헤아리며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감정이나 뇌기능의 일부가 심각히 손상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주는 괴로움과 고통을 가장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 청소년, 성인들은 ‘차라리 1년 살다오는 게 낫다’ 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하니 과연 진실과 진심이 가진 힘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가 보다. 이러한 근거에서 다시, ‘형량’ 증가가 갖는 의미에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여러 대안 중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예방이라 함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고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기본 법치사회에서의 시민의식, 의무와 권리에 관한 수업시간이 교과과정에 편성되어 있고 경찰관이 직접 와서 (법의 집행관으로서의 존재감이 교육상 꽤 효과적이므로) 교육을 실시한다. 타인의 신체에 손 대지 않는 것 등 가장 기본적인 예의, 매너부터 시작하여 민사, 형사적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사안들, 마지막으로 마약교육까지,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한 안내와 설명과 함께 경각심을 전달한다.


시민의식에는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불법적 상황, 행위를 목격했을 때 ‘알려야 하는 의무’ 에 대한 상기도 포함된다. 방관하면 공범이다, 라는 인식이 확실히 이식된다. 어던 불법행위 (foul play)에 대해, 발생지점이 학교장면이라면 (학생신분이라면) 일단 소속 학교 또는 관할 교육구 내 교사, 학교에 알리는 것이 철칙이다. 공공의 질서가 파괴되는 행위에 대한 ‘신고’는 고자질, 밀고가 아니라는 사실. 폭력을 포함한 모든 불법적 행위에 대해 보고 받은 교사는 교내 규정과 절차에 의해 해당 위원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이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나 보호자가 소환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는 서로를 대면하고 함께 해결점을 모색해야 하며 이때 학교는 중재역할을 맡는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경찰 등의 공권력의 개입이 시도되고 동원된다. 이러한 과정이 ‘범죄’의 초기단계에서 즉각적으로 작동되면 청소년 범죄의 대부분이 예방될 수 있다라는 전제이고 제법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시스템이다. (외국인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과정의 집행을 수차례 목격했다. 개인적으로 국내 외국인학교의 교과과정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지만 이런 과정에 대한, 학교폭력예방에 대한 절차나 규정은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


돌만 던질 게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아이는 아니다, 라고 분리시킬 게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어떤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조치들이 필요한지 다각적으로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교육현장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른 아침에 이런 글을 써보았다.


http://www.womenofchina.cn/womenofchina/html1/data_speaks/1611/5043-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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