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지 Sep 15. 2017

[영화] 누구에게나 있는 '그것'

나만의 공포를 극복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want it or not

1. 그것의 이름


그것. “It”.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이름을 알고 나서도 두려워서 부르지 못해 ‘그것’이라 부른다. 정체자체가 불분명하기도 하고, 각자의 공포대상에 따라 자유자재로 둔갑하는 괴물체이기에 때문에 딱히 뭐라 규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도 하다. ‘그것’이 자칭하는 이름  “Pennywise” 에는 ‘1원 한 푼도 알뜰하게’ 란 뜻이 담겨있다. 원작에 나와 있는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범우주적 악의 존재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 


더 나아가자면, “It”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비특정된 대상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놀이에서의 ‘술래’를 가리키기도 한다. 끝없이 쫓아다니는 숙명의 존재인 술래. 누구나 피해 다니고 잡히면 안 되는 ‘공포’ 의 대상이지만 독립적 존재가 불가능한, 기피와 ‘공포’의 제공자. 그러나 그 또한 ‘게임의 법칙’ 내에서 허락된 공포라는 숙주나 매개체가 있어야 존립이 가능하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2.  Derry, Maine -- Derry, North Ireland. Derry, Anywhere


공포영화 장르지만 동시에 ‘성장영화’인 “그것”은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북동부의 메인(Maine) 주의 가상도시인 ‘데리(Derry)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Derry 하면 자동적으로 북 아일랜드에 실제로 위치하고 있는 ’피의 도시‘ 데리가 연상된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두고 영국군과 유혈충돌이 발생한 도시 데리. 지난 해 그곳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필자는 데리 시가 안고 있는 고요한 비장함이 영화의 분위기와 매치되었다. 현실의 아픔 속에서 해결점에 대한 방안과 선험적 혜안이 부족한대로 생존의 절대과제를 안고 가야 하는, 거대하고 위대한 생명력을 지닌 아이들. 북 아일랜드 데리의 모습과 겹쳐지며 애잔한 감흥을 더해주었다.



3. 공포의 실체


영화 줄거리를 한 줄 요악해보자면, 27년 주기로 마을에 나타나 주로 소외 당하고 왕따 당하는, 씻기지 않는 큰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아이들을 먹어치우고 잠을 자는 괴물 페니와이즈와, 연대를 이룬 ‘왕따클럽’들과의 사투라고 볼 수 있다. (2019년에 개봉될 2부에서는 원작의 구성에 따라 성장한 아이들의 30년 후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 안에, 저마다 다른 공포의 대상, 트라우마의 극복, 학교 내 폭력, 어른들의 무능력, 부조리, 그들 세계에 대한 불신, 그들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신체폭력, 암시된 성폭력, 언어폭력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매일 매일 대면하고 있는 현실은 괴물의 위협보다 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괴물은 이러한 아이들의 두려움과 상처에 거한다. 현실 세계에서 아이들은 더 무력한 존재들이다. 많은 것과 타협하며 성장과 성숙을 거쳐 그들을 힘들게 했던 ‘어른들과 같은 어른’이 되지 않는 한 맞서거나 대적할 수 있는 지위에 이를 수 없다. 무기력하게 당하고 깊은 상처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인 아이들은 그러나 괴물과의 싸움에서는 ‘간단한’ 처방 하나로 괴물을 소멸시킬 수 있다. ‘두려움’을 삼켜 극복하면 이 괴물은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4. 공포의 극복 


사람에겐 누구나 보편적인 공포를 조장하는 상징적 대상들이 있고 각자의 성장과정에서 체험한 개별적 공포의 대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후천적 공포의 대상이 형성되면 뚜렷한 형체가 있든 없든 (특정 상황이나 조건. 예컨대, 사람이 많은 곳(공황장애), 신체적 또는 정신적 취약점에 대한 [과도한] 의식) 뇌의 변연계를 즉각적으로 자극시켜 이성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더욱 악화된 경험으로 몰아가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있다. 완전히, 적어도 어느 정도 편안해지는 수준까지. 하지만 늘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외부의 도움, 신뢰할 수 있는 내 밖의 자원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그러한 공포상황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자학적 쾌락에 길들여져 있다고 해도 좋다. 


5.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포인트들


미국 학교에서의 여름방학. 미국은 한 학년이 6월초에 끝난다. 졸업식들도 그 때 있다. 1980년대 만해도 여름방학이 장장 3개월에 달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 요즘은 계절학기 등의 영향으로 2개월 정도로 단축되었다 –- 여름방학은 학생들, 아이들에게 엄청난 해방과 해소의 기간이 된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Summer of ‘69” 등 익숙한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여름‘은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상대적으로 겨울방학은 2주 정도로 매우 짧다.) 한 학년의 마지막 날, 즉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로부터 ’Yearbook‘ 이라는 앨범을 구입하게 되고 여기에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사인을 남긴다. Yearbook 자체가 학생들 동아리에서 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학년도에 일어났던 사건과 이벤트를 중심으로 사진과 글을 담고 있다지만 게재되는 내용은 주로 ’잘 나가는 아이들‘ 위주인 경우가 많다. 일단 거기서 먼저 소외와 배제가 이뤄지고, 그 다음엔 ’사인‘을 해주면서 또 한 차례 희비와 애환이 벌어진다. 인기 있는 아이들은 너도 나도 자신이 나온 yearbook 페이지에 (또는 앞면과 뒷면에) 사인과 흔적을 주고받으려 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텅 빈 yearbook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8`90년대만 해도 미국에는 천식환자가 많고 특히 소설과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중요한 순간에 Asthma attack (천식발작)을 일으켜 위기감이 고조되는. 영화 속에서는 편견 가득한 언어폭력과 과잉보호를 휘두르는 엄마에 짓눌려 있는 에디가 이 증상을 갖고 있는데 그가 분사하고 있던 스프레이, 복용하고 있던 약이 ‘Placebo 위약(가짜약)’이라는 게 밝혀진다. 에디는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른다. 분하다는 듯 내가 gazebo (정원 등에 놓인 정자, 오두막 같은 구조물)를 먹고 있었던 거라구! 라고 한다. 


- 영어에서는 탈 것의 성별을 ‘여성형’ 으로 칭한다. 그래서 자동차 연료를 만땅(풀탱크)으로 채우라 주문할 때도 fill her up, fill’er up 이라 하고 남성이라면 애인취급을 한다. 배도 마찬가지여서 주인공 빌이 동생 조지에게 배를 만들어줄 때, 조지가 ‘it’ 이라고 칭하니, 아냐, ‘she’ 라고 정정해준다. 나중에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도. 어떤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성별을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의 여타의 관계로부터 구분되는 특별한 의미의 시작이다. 공포의 대상도 다르지 않다. 그것(it)의 속성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름 짓고 그것의 역할을 내가 제한하고 확장을 허락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현상유감]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