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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Jan 05. 2017

[my story] 시간과 순간들 속의 음악

지금 무얼 듣고 계세요?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볼까요? (…) 


패닉이었죠. 100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데 차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 말 그대로 미치겠더라고요. 그런데 CD 에서 가야금 캐논이 흘러나왔어요. 흐르는 선율에 맞춰서 빗방울이 보닛 위로 떨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구요.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성질이 나다가 다음 곡이 나오면 또 잠잠해시고, 제가 들어본 가야금 연주 중 최고를 발견했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캐논을 들어보자 하고 각각 다른 버전으로 들려줬어요. 집에 총 네 장의 캐논 앨범이 있었는데, 그중 가야금 캐논을 듣자 애가 갑자기 말이 없어져요. 그리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탁 하고 물을 잠그더군요. 가족이 모여 앉아 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음악을 들었어요. 보배로운 순간을 또 한 번 경험했죠. 1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납니다. 죽을 때까지 기억날 장면, 정말 가져가고 싶은 순간, 물소리가 탁 멈추고 집사람이 앉던 순간, 내 삶의 진주알입니다. (pp.95-96)


...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제가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서 선생님들께 부탁이니 딱 한 번만 효율을 포기하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를 놓고 아이들에게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라고 했습니다. 분명 그중 반 이상은 감동을 받아 소름이 돋을 것이고 그러면 그걸로 됐다고, 그 이후로는 스스로 찾아 들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p. 83)


박웅현 <여덟단어>


——-

고등학교 1학년때 방송출연을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모두 미국으로 떠나신 후 외할머니와 살고 있던 때라 대충 머리 빗고, 교복시절, 몇 안되는 사복 중 방송에 적합할 듯한 빨간 스웨터를 꺼내입고 버스 타고 MBC 방송국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겨울날 저녁녹화. 반포에서 여의도까지 차들 엄청 밀리고.. 버스 안에서 얼마나 애가 타던지.. 결국 지정시간보다 늦게 도착.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방청객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마지막 출연자. 어찌나 미안하고 낯 뜨겁던지. 당시의 열기가 아직도 후끈 느껴진다. 기다림에 지루하고 지친 기색 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반겨주고 응원해주는 수백명의 긍정기운을 느낄 수 있었음은, 적어도 내게 전달된 바로는, 큰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뭐 결과도 좋았다. 엄마 아빠, 저 장원 먹었어요! 


# 차인태 아나운서, 주철환 PD, 환일고, 경복고  등 남학생 4, 여학생 1 = 나 . 지금도 귓가에 생생한 시그날 음악,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 언제 어디서 곤히 잠들었다가도 눈이 번쩍 떠지는 그 선율. 중3 즈음부터 토요일 아침 빠짐없이 시청하며 출전의 열의를 불태웠었다.


# 이민수속을 위해 미대사관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들었던 곡. Police 의 King of Pain. 미국인 영사보다 그 옆의 한국인 통역여자분이 더 차갑고 쌀쌀맞은 태도로 대하길래 무척 마음 상하고 속상하던 기억. 미국 가서 영어란 것을 꼭 정복하고말리라, 는 굳은 결심을 불러 일으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번 거부 당하고 부모님 가신 후 2년후에야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슬기둥이란 국악그룹의 연주를 처음 듣고 온몸에 일었던 전율. 정황은 잘 생각 안나는데 세포가 하나하나 다 살아움직이는듯한 감동이었다. 추억에 걸맞는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매치시켜야하나..박웅현씨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전까지, 엔리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였다. 그거 말고 몇 곡 더 생기긴 했지만..


가야금 캐논: https://www.youtube.com/watch?v=pIV8ZaNz_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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