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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돈

나는 더 나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by 왕씨일기

20살에 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들어가 4년을 내리 다니면서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 한번 하지 않고 나름의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고 졸업과 동시에 꿈에 대해 다시 한번 도전을 했고, 운이 좋게도 남들은 몇 년이 걸린다는 시험을 단번에 합격하여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제2의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년 동안의 시험 준비 비용과 2번째 대학의 첫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여 내 ‘일탈’에 대한 값을 최대한 스스로 감당하려고 하였으나 다시 대학생이 되어(그것도 이제는 본가에서도 멀어져 자취 비용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게 되니 염치를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유일한 경제적 버팀목을 감당하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손을 벌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돈. 이기적인 마음과 자기 위안적 표현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나중에 잘 되어서 효도를 하면 되지 않는가, 라는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 처음으로 생활해보니 모든 순간들이 돈이었고 내 모든 순간들에 대한 값을 아버지가 홀로 치러야 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의 부담을 줄이고자 나 나름의 방법을 열심히 모색하였고, 가장 근본적이고도 가장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고 장학금을 받는 것.

남들에게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고 스트레스로 속이 뒤집혀 변기를 붙잡고 쓴 물을 게워내다 지쳐 변기 커버 위에 쓰러지듯 엎드린 순간에도 한 손에는 프린트물을 놓지 않았다.


나이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는 대학생활도, 지역적 특성으로 도심보다는 다소 폐쇄적인 주변 환경도, 주변에 아는 이 하나 없어 모든 것을 나 홀로 감당해내야 했던 순간들도, 성적과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했던 그 몇 년이라는 시간들도 결코 쉽지 않았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도 겨우 25이었고 대쪽 같은 성격에 환경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적도 수차례였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돈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돈. 한 달에 80만 원씩 받던 그 돈은 아버지의 시간과 청춘을 맞바꾼 대가였다. 한순간도 그 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지 잊어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젊음과 시간과 청춘을 잡아먹고 살아가고 있구나. 부러지고 쓰러지고 깎여져 나갈 때에도 다시 스스로를 다잡고 되뇌었다. 나는 아버지의 젊음과 시간과 청춘을 잡아먹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 아버지의 청춘이 헛되이 흘러가버린 것이 아님을 나는 매일, 매 순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다시 본가와 가까운 서울로 올라온지도 2년이 지났고, 나는 벌써 30대 중반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돈으로 생활을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립한 상태이지만 힘들거나 다시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부적처럼, 습관처럼 또다시 되뇐다.


무너지면 안 된다. 아버지의 청춘을 먹고 자란 나는 이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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