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나오는 더러운 마음
생각이 너무나도 많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끊이지 않는 걱정과 고민들에 고뇌에 싸일 때가 많다. 신중하다면 신중한 성격 때문에, 아니면 용기가 없어 무엇을 행동하기 전에 끊임없이 생각만 되뇌는 소심함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순간들 속에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 이미 지나가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 아니면 가볍게 투정하는 식으로 무언가를 비는 형태로 나타날 때도 많았다.
‘아 이건 이제 더 못하겠네, 이건 이렇게 되었으면 좋았을걸. 이 사람은 너무 싫어. 그때 그 일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많은 경험이 되었어. 또 일어난다면 좋을 텐데’
공상과 망상들 속으로 오가며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며 기원 아닌 기원을 어딘가로 올려 보낼 때도 있었다.
진심도 아닌 그저 떠오른 잡념 정도의 가벼운 이런 희망과 바람들이 이상한 형태로 이뤄져서 돌아올 때도 많았다.
너무나 나 스스로가 그런 바람을 은밀히 품고 있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에게는 남모를 징크스가 있다. 내가 자랑하는 무언가는 항상 박탈당하는 형태로 내게서 빼앗기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누군가와의 친분을 자랑하면 어느새 어떤 일들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사람과의 이별을 맞는다던가, 나의 행복을 전시할 때에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행복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난다던가. 이런 일들이 내가 어떤 패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깨달음이 내 안에 일었을 때 나는 내 스스로를 전시하는 일을 멈췄다. 행복하고 좋은 일은 마음속으로만 품고 웬만하면 밖으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이 자그마한 행복들도 꺼내놓았다가는 언제 파괴될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두 번째 징크스를 깨닫게 된 것이다. 망상일지언정 내가 가볍게 생각한,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일들이 종종 무서울 정도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 일들이 발생함에 내가 그러한 일들이 생기게끔 무언가의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끊임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의 사념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내가 무엇을 바라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째서 내 우주는 이런 일들만 선택적으로 골라 도와주는 것일까. 제대로 빌지도 않은 소원에 부러져 소원을 이뤄주는 원숭이 손가락 괴담처럼 언제 또 나의 그저 지나가는 망상이 소원으로 수리가 되어 이뤄질지 두렵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인과를 언젠가 나에게 물을 것도 무섭다. 이런 생각들조차 내 망상에 가까운 자의식 과잉에 의한 것이겠지만 몇 번이나 연달아 이어지는 일들에 내 마음속에서도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내가 무엇을 비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언제나 마음의 보초를 세워 쉽게 내비쳐지지 않도록, 빗장을 잘 걸어 세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