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일 없이 산다.

너는 어떻니?

by 왕씨일기

미운 사람의 근황에 있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일까,라고 떠올려보았을 때

오히려 가장 덤덤한 별일 없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이 제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 일도 없다. 별일 없이 산다.

요즘의 이 자극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 이런 무미건조한 말이 오히려 더 빛을 내지 않는가,

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사건들이 없어도 그저 평온함과 큰 일탈이 없이

조용한 냇물처럼 흘러가는 하루들.




한동안 학업 때문에 지방에서 혼자 몇 년을 살아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본가는 경기도로 내 친구들, 가족들도, 모든 생활 반경이 서울, 경기도로 맞춰져 있었다. 외로운 타지 생활 중에 sns나 오랜만에 닿는 연락들로 하루하루 화려하고 즐거운 도시 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냥 기쁘지만도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만 뒤처져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내 청춘과 시간을 받쳐 얻고자 하는 가치가 과연 그럴만함이 있는가. 불안하고 나만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크지는 않지만 유난히도 사소한 불행들이 겹쳐 불쾌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혼자 방 안에서 빨랫대에 밀린 빨래들을 개키고 있던 순간에, 장난과 같이 천장 위에 전등이 폭발하고 말았다. 유리조각들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온 이불과 빨랫감 위에 흐드러졌고, 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를 했다. 화룡정점과 같은 이 하루의 마무리에 그래, 그냥 평온하고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최고로 좋은 거구나.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은 제일 소중한 일인거구나, 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일도 나중에 글이든, 술자리 에피소드로든 나의 인생 ‘이야기’ 중 하나로 쓸 수 있겠구나, 하는 계산적인 생각도 들었다.


아무 일이 없어도, 또 아무 일이 있어도 모두가 소중한 시간들이라 생각된다.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고 이제는 아무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평온했구나 오늘도,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무 일이 있어 마음이 힘들거나 지칠 때는 또 깨닫게 된다. 아 오늘 나는 또 내 안의 이야기들이 생겨났구나, 내 안의 풍요로움이 한 층 쌓이게 되었구나. 어떤 시간들 속에 있어도 나는 귀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내 이러한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염원해 마지않았을 내일이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