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문제를 풀다 문득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완벽한 문과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수학은 지독한 짝사랑과 같은 존재였다. 잘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거리지만 그렇지는 못한.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고 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이 정해져 이제는 두 번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을 인생 노선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인생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조금 욕심을 내어 개인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수학을 시작해야 하는 것, 심지어 물리까지 겸해서라는 것, 나에게는 올해 기억에 남을 큰 도전이었다.
대학 입시때와는 달리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시험을 자청하여 공부를 한 것이지만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여 굳은 머리로 낑낑거리는 시간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벡터라는 개념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고, 시작점이 다른 두 개의 직선을 비교할 수 없어 동일 선상으로 이동을 시켜 비교를 해야 한다는 점이 문득 나에게 번개와 같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마치 우리 삶과 같구나.
살아가다 보면 어느 정도 인생의 이정표 같은 것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 있다. 학교를 다니고, 대학입시를 준비해 대학을, 졸업 후엔 좋은 직장을 가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늙어가는 것. 나이대마다 요구되는 점들이 있고 거기에 미치지 않으면 노선을 이탈한 부적응자 취급을 받고, 그렇지 않아도 같은 나이대에서도 아직 레일선 상에 있다고 해도 비교와 계급구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똑같이 대학을 가도 어느 대학을 갔는지, 어느 과를 갔는지 비교의 영역을 끝이 없고 나는 그 언제도 나보다 우등한 사람들을 찾아 쉬운 절망 속에 빠지고는 했다. 소셜미디어나 대중매체에서는 항상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이 비추어줘 절망의 함정을 곳곳에 뿌려두었고,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이 그 사람들에 비해 못하다고 느껴질 때에는 인생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도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감정은 어렸을 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다 벡터를 만난 것.
애초에 같은 ‘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모두 각자의 시작점에서 출발해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인데 애초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은 아닐는지. 부정당했던 내 현재가 조금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아아 내가 잘못된 게 아니구나. 충분히 잘해왔구나. 그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이대로만 열심히,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만 없이 살자,라고 늦은 밤 방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이면지에 연필로 수학 문제를 슥슥 풀면서 스스로를 위안시켜 주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 지독한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수학이 조금은 나에게 야, 괜찮아하고 응답을 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