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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Feb 18. 2024

혼자 푸바오 보러 가는 아들, 예민하지만 따뜻한 딸

매일 쓰는 짧은 글: 240218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대문자 T인 우리 엄마는 감정적인 이야기를 거의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이 사랑스럽다던가 그런 것도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나와 오빠를 키울 때에도 어린 시절,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보이기보다는 잘 키워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은 착실히 잘 해내지만 그 마음을 얻어내기는 꽤나 어려운, 그런 성실하지만 조금은 차가운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이다. 그런 엄마가 푸바오에 한참 푹 빠져지 냈을 때에는 거의 나에겐 천지가 개벽하는 정도의 충격을 느꼈다.






엄마는 어느 날 TV에서 푸바오 특집을 보고서는 마음을 홀랑 빼앗겼는지, 어느샌가부터 핸드폰을 봐도 푸바오, 이야기를 해도 푸바오, 때늦은 아이돌 덕질처럼 푸바오에 푹 빠져버렸다. 은근슬쩍 푸바오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데 마음이 찡했다. 뭔갈 원한다던가 하는 표현도 잘 없던 엄마였기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애버랜드를 가서 그 사랑해 마지않는 푸바오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만 입장료도 입장료지만 차가 없으면 가기가 힘든데, 안타깝게도 나는 장롱면허. 오빠는 주말에만 시간이 되니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 걱정되어 말도 꺼내지 않았고, 아빠는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그 몇 분, 그 멀리서 잠깐밖에 볼 수 없는 털 달린 동물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어떻게 하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길 며칠. 오빠가 자기의 여자친구와 둘이 오빠차를 타고 애버랜드에 가 푸바오를 보고 온 걸 알게 되었다.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였다. 뻔히 엄마가 요즘 푸바오에 빠져 애버랜드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아니,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까 설마?) 그냥 홀랑 자기 여자친구와 다녀오다니. 나였으면 그럴 기회가 있으면 먼저 엄마를 모시고 갈 텐데. 그런 당연한 감정이 안 느껴지나 싶어 진심 사이코패스 같았다. 이미 동물 머리띠로 대충 눈치를 챈 엄마가 혼자 속상해할까봐 나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아니 엄마 있잖아, 오빠가 자기 여자친구랑 다녀왔다니까~하고 고자질로 미주알고주알.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게. 그 얘기를 듣던 엄마가 조금 씁쓸한 미소를 띠는 건 내 착각이었을까, 괜히 내가 다 속상했다.


그렇지만 나도 남 말을 하지 못하는 처지, 바로 나도 엄마의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 그날 생겼다. 업무상의 일로 갑작스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예민해진 바람에, 말을 거는 엄마에게 조금 예민하게 대답을 한 것. 빨리 처리를 해서 보내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자꾸 말을 거는 엄마에게 순간적으로 화를 내버리고 만 것이다. 울컥 치미는 화를 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지만 일처리에 마음도 급하고 사과를 하기도 용기가 없어 그냥 멋쩍어하며 상처받은 엄마를 못 본 척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내가 과연 오빠보다 엄마에게 더 잘해주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원론적인 의문이 생겼다.


평소에 엄마를 전혀 챙겨주지는 않지만 따로 예민하게 굴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일이 없는 오빠. 그리고 평소에 엄마 생각을 많이 하고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이것저것 많이 챙기고 신경 쓰지만 크던 작던 가끔을 속을 뒤집어놓는 딸. 누가 엄마에게는 더 좋은 자식일까. 이 일이 일어난 지는 몇 달 전이라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엄마의 행복을 바라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아직도 가끔 저때의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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