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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Mar 02. 2024

하루 중 가장 우울해지는 시간, 어스름의 저녁 빛

매일 쓰는 짧은 글: 240302




25살, 어리다면 어리고 어른이라면 어른인 그 시절, 나는 처음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 머나먼 지방에서의 자취를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엄마의 등을 보내며 혼자 첫 자취방에 돌아와 차가운 빵과 우유를 먹으며 작은 원룸방에 웅크려 앉던 기억은 아마 내 인생의 어떤 이정표로 영원히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걱정에 무색하게도 나름 자취 취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정리하고 계획하는 것이 즐거운 전형적 J인 나는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내 삶을 내 손으로 온전히 꾸리는 감각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휴일이면 바지런히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스르륵 눈이 감겨 잠이 들다 깼을 때, 그때가 나에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잠이 들었을 때는 아직 해가 환하게 비추던 낮이었다가, 어렴풋이 잠에서 깰 때면 늘 지금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스름의 시간대였다. 저녁도 아닌, 오후의 끝자락 그 어딘가. 생명력이 가득했던 햇빛은 저물고 쓸쓸하고 차가운 침묵이 나를 감싸 안은 방을 매정하게도 뒤덮는다. 그 순간,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기분에 잠겨버리고 만다. 그 고요함, 그 헛헛함. 7년의 긴 자취 시간을 뒤로하고 상경할 때의 나에게 자취의 이미지는 활기찬 생활의 냄새보다는 그때의 그 잠에서 깬 숨 막힐 듯한 공허와 외로움으로 기억된다.


 




집으로 돌아와 언제나 누군가와 같이 있는 생활을 하는 요즘에도, 나는 이 어스름의 시간대가 싫다. 하루의 시작과 함께 나에게 주어지는 그 밝음과 희망, 활기참이 벌거벗어지고 저물어가는 불안만이 가슴에 남는 것 같아서. 오늘 하루도 내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만 같아서. 그럴 때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티브이를 보는 엄마에 무릎께에 가 아무 말 없이 누워본다. 괜찮다, 혼자의 시간은 지났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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