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한참인 지금 날까지, 항상 내가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이나 그 책의 실물을 꼭 소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게 전자책의 형태이든 실물 종이책의 양식이든 상관없이.
이 책은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어플에서 진즉에 다운을 받아놓고 방치해 뒀던 여러 책들 중에 하나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우스워 강박 증상처럼 읽고 싶은 책들을 마구 저장해 두어도,
또 시간이 지나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떨어질 때도, 아니면 읽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 등으로 미뤄둘 때도 있는데 이 책도 그랬다.
얼핏 책의 자극적인 소개, 어린 나이의 임원이 되는 길일 포기하고 17년 동안 타국-그것도 서양인이 태국-에서 승려가 되었다가
또다시 환속하여 그동안에 얻은 깨달음을 나누고 종국에는 불치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뜬,
한눈에 시선이 가 망설이지 않고 리스트에 저장은 해두었지만 막상 손이 가지는 않았다.
뭔가 기구하고 특이한 인생 경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왠지 그간 세상에 쏟아지는 많은 자기 계발서적,
물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의 연장선상일 것만 같아 한동안 방치를 해두었다.
그러다 또 변덕진 마음의 농간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와 따뜻한 이불속에서 읽을 만한 책의 목록을 살펴보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어디 너는 또 무슨 뻔한 말을 하나 한 번 보자 라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글귀를 수집하는 오래된 취미가 있던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책의 마음에 드는 글귀를 정리하는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책의 주인공은 우리네 일반적인 범인들과는 달리 또 굉장한 위용과 자아성찰과 결단력 등이 있겠지 싶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내 주변 친구, 이웃 아저씨 같은 모습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어 놀랐다.
물론 출세가도를 달리다 문득 하차하여 출가를 하는 것에 대한 결단력은 범인의 그것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는,
결국 이 사람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점들이 많았다.
고행의 불편한 점, 잠을 자지 못하고 하루에 한 끼밖에 식사를 하지 못해 힘들고 수많은 행정 업무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괴로움을 느끼는 등 속세를 떠나 오랜 시간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 속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결의 고민들을 품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명상을 시도할 때는 머릿속에 당연히 많은 생각들이 들고 평온한 마음을 얻는 것도 당연히 힘들다.
이런 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깨달음을 얻고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닌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용기도 주었다.
책들의 많은 부분들이 저항 없이 마음속으로 다가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밤샘 명상을 하는데 머리 위에 성냥갑 같은 작은 물건을 올려두고 졸다가 그것이 머리에서 떨어지면 하루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식사시간에 반찬은 못 먹고 밥만 먹어야 한다는 벌칙이 있어, 잠꾸러기였던 주인공 나티코는 졸더라도 머리 위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자세를 연마했다는, 그의 인간다움과 귀여움에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렇듯 일상적인, 인간적인 고민들과 가끔은 꾀도 부리는 시간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건네지는 깊은 통찰의 이야기들이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또한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와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모습은 그 실행력에, 그 단호함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불교에 의탁한 몸을 다시 환속하고, 또다시 알에서 깨고 나온 세상 속에서 힘겹게 적응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신은 무자비하게도 그에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을 선고했다. 사실 다른 사람의 일이라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그 수많은 수련을 통해서도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에는 많은 번뇌와 좌절 등의 감정이 있었다는 것도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다소 놀랐다. 종국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생애에의 여행을 끝마쳤지만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책 제목과 마찬가지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꽉 쥔 두 주먹을 피고 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내가 필요한 것은 언제든 내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awareness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짧지만 온전히 스스로로 살아낸 어떤 한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