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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Feb 26. 2023

#3. 아름다운 봄날 같은 시절의, <연가>

아사이 마카테

책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오랜만이다.



처음에는 그저 뻔한 일본 시대 소설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연애물이라던가, 로맨틱 코미디라던가 그런 장르가 전하는 대책 없는 밝음이 오히려 부대끼는 이끼투성이인 내 마음에, 그날따라 유난히 사랑 노래를 들으며 언덕을 올라 도달한 도서관에서 길이 가팔라 숨이 찬 것 때문인지, 아니면 랜덤 재생으로 귓가에 울리던 사랑 노래 때문인 건지 그만 가슴이 두근거려 달달한 연애 소설이 끌려 위시리스트에만 오래 방치해 왔던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시작부터 난해한 일본 시대 배경과 일본 전통 예술에 대한 용어들로 진입장벽에 부딪혀 내심 낭패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데 말괄량이 철부지 여자아이가 잘생긴 무사에게 반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시집간 곳에서도 티 없는 해맑음으로 사고 치고 다니는 모습에 답답함과 그런 '해맑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그 든든한 재력의 뒷배경이 부러워 책 속 인물이지만 아니꼬웠다.




그러다 이야기는 급전개를 맞이해 전쟁과 투옥,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끝없는 절망 속으로 던져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은 알 길이 없으며 화려했던 지난날들은 이미 저물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둠 속에서도 굳세게 버티는 모습의 주인공은 더 이상 철부지가 아니었다. 결국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왔던 사랑하는 그이는 주검이 된 지 오래였고, 삶의 힘든 순간에 의지했던 시만을 붙들어 전쟁이 끝난 후 남은 평생을 살아 남부럽지 않은 영화도 누렸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순간 속에서도 늘 외로워한 모습. 그저 기다리고 기다린 사람의 발소리만을 한없이 기다리는 모든 시간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민다.



흘러간 시간과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어린아이' 시절의 행복과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던 이들의 죽음과 몰락의 이야기가 이어져도, 턱턱 막혀오는 숨통을 간신히 턱 끝을 들어 숨을 쉬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드디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 구간에서.





"님에게 사랑을 배웠네

그러니 잊는 길도 가르쳐 주오


스승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영예를 차지해도 스승은 고독했다.

열심히 살아도 가장 그리던 사람은 이승에 없다.

없다.

스승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이 없다,를 두 번 강조한 곳이,

이 단조로운 반복이

너무나 맹렬하게도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홀로 살아남았지만 내 과거를, 더 이상 내 원래 이름을 불러주는 하나 없는,

내 삶의 한 시대가 이미 저버린..

그 언젠가 읽었던 다른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 그는 끝내 엎드려 울고 말았다.

나의 청춘은 끝났노라고. "



그 외로움이 전해져 한 방울, 두 방울 멈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책을 읽고 바로 자야지 했는데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켜

지금의 마음을 글로 남긴다.



왕씨일기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medesu/22302338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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