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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본 적 없는 "내 나라", 대만에 대해서

화교의 대만 여행기

by 왕씨일기


한국에서 중화민국, 즉 대만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겪은 여러 불편함 중에 가장 손에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해외 비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권 파워 2위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비자 없이 출입국 할 수 있는 한국 여권과는 다르게 대만 여권은 외국을 방문할 때 비자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온전한 대만 여권, 대만 신분증이 있을 경우에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불편함이지만 문제는 우리 화교들과 같은 '반쪽'짜리 신분증과 여권을 가지고 있을 때 생기게 된다.


대만 여권으로 대만 사람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 한 번도 대만에 가본 적, 정확히는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가는 등 그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우리들은 대만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지 못한다. 이에 대만이라는 나라에서 보장해 주는 최소한의 권리들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대만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대만의 국민이라고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은 물론, 대만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대만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리 비자도 따로 받아야 하는 재밌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살고 있는 이 한국땅을 제외한 그 외에 거의 모든 '외국'은 전부 사전에 그 나라의 대사관을 방문하여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 나의 본국, 모국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는 우리 화교들을 대변하는 집단이 따로 있어 이런 업무들을 처리하주기도 하여 대만 출입국에 관련된 비자를 받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래서 대만은 종종 부모님과, 또는 친구들과 나름은 편히 갈 수 있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그렇지만 재밌는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외를 출입할 때, 여권 심사를 받으러 줄을설 때면 나는 내가 어디에 서야 할지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차라리 아예 대만이 아닌 제3국으로 출국하면 그 나라에 도착해 foreigner line에 서면 되지만 대만의 경우는 내가 자국민 라인에 줄어서도 되는지, 아님 외국인 라인에 줄을 서야 하는지 혼란이 오고는 한다. 심지어 요즘은 대부분 e-gate로 출입하는데, 나는 거기에 해당되는지도 혼돈이 한참을 방황하다가 일단 어디에든 줄을 서고 그 후에 내 여권을 본 공무원분이 안내해 주는 데로 가서 다시 줄을 서고는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같이 해외, 특히 대만에 갈 경우에는 항상 엄마 아빠의 뒤에 숨어 엄마 아빠를 먼저 보내고 그 후에 여권 심사를 받고는 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항상 그렇게 나의 신분이나 국적을 명확히 갈음해야 하는 장소에 서면 손에 땀이 나고 긴장이 되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의 자아 성립에서부터 이어져온 아주 유서 깊은 불안감이 아닌가 싶다.


입국을 할 때는 비행기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는 했는데, 나의 경우는 대만 여권으로 대만으로 가는 거라 따로 안 써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익숙한 불안감의 엔트로피를 줄이고자 그냥 조금 귀찮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입국신고서 표도 다 작성해 뒀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같이 일행으로 간 한국 국적의 친구는 별도로 입국신고서는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나는 꼭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나의 조금은 편집증적인 준비성이 그나마 빛을 발휘해 다행이라고나 할지. 다만 어디를 가나 나는 예외 없이 모든 곳에서 모든 서류를 다 제출하고 반쪽짜리 여권과 신분으로 항상 더 주시를 받는 기분이 들어 반쯤은 억울하고 반쯤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입국을 하게 되면 이제야 비로소 해외로 나왔다는 설렘이 찾아온다. 나의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이 아닌, 이렇게 그 나라에 무사히 잘 입국했을 때야 실감이 난다. 대만은 부모님과는 한 번 정도만 가고 그 후로는 대개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가는 느낌으로 방문을 했다. 한국에서 일상에서 너와 나의 피아차이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가 대만에만 오면 우리는 사실 이렇게나 다른 신분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감각을 매우 명확하게 체감할 수 있다. 항상 입국 전에 이렇듯 지나치게 긴장 하고 우왕자왕하는 나를 보고는 다들 이해하지 못해 주었는데, 그런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삶을 당연하게 살아온 친구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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