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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Jan 09. 2024

추억의 도시락 돈가스

매일 쓰는 짧은 글: 240109



내가 다녔던 화교학교에서는 따로 급식실이라던가 그런 시설, 시스템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로 학교 앞 한식당에 매달 돈을 걸어두고 가정식 백반을 먹거나 한솥을 시켜 먹거나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운이 좋은 편이어서 엄마의 도시락을 받아 몰래 학교 도서실에서 점심마다 친구들과 먹고는 했다(사서로 일하며 있었던 몇 안 되는 혜택 중 하나였다). 보통은 아침식사로 나오는 메뉴와 같은 메뉴를 싸주시지만 가끔은 '특식'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의 수제 돈가스. 전날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 와 얇게 두드려 튀겨주는 그 돈가스. 에어프라이기도 뭐도 없던 시절이라 말 그대로 기름 듬뿍의 추억의 얇은 고기 돈가스이다. 


아침에 싸주시고 나서 점심쯤 되면 식어서 조금 그 맛이 덜어질 만도 한데, 그게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뚜껑을 딱 열고 나면 약간은 눅눅해진 그 돈가스를 돈가스 소스가 아닌 케첩에 찍어먹으면, 뭔가 내가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나이를 먹고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마다 온 식구의 아침 상을 차려주시고 심지어는 자식의 도시락도 싸주시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시절 당연하게 받아왔던 엄마의 노고는 감히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과연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서 뭔가 철이 들고 나서는 시장에서 파는 돈가스나 얇은 고기 돈가스를 보면 왠지 조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 등이 뒤섞여 약간은 복잡해지고는 한다.





한 달의 한 번, 아빠가 친구들과 저녁 회식 모임이 있는 날에는 평소 아빠가 좋아하지 않는 육식을 편히 맘껏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이번 달의 아빠 없는 '육식' 파티의 메뉴는 오랜만에 엄마의 수제 돈가스. 갓 튀겨낸 돈가스를 여전히 케첩에 찍어먹으면서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맛은 변하지 않았구나. 언젠가 나는 이 맛을 굉장히 많이 그리워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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