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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Jan 12. 2024

내가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닌 “갈 수 있는”나라

매일 쓰는 짧은 글: 240112

멀리서 바라본 공항의 야경


1차 시험이 끝나고 2차 시험까지는 앞으로 2주. 1차보다는 여유로운 상황에 멍하니 누워 시험이 끝났을 때 갈 여행계획이나 세울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속해있는 근무처는 2월 말이면 퇴사를 해야 하고 그 뒤로는 바쁘게 또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인생 2막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험이 끝나는 1월 말에서 2월 말까지의 한 달이 마치 수능이 끝나고 대학을 합격하고 마냥 놀고 쉴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처럼 나도 마지막 유급 농땡이(?)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확실히 재작년무렵인 것 같다. 평범한 근로자로서 주변에서 하늘길이 뚫렸다고 느껴졌던 것은. 생일이라 서로 주고받는 다정한 카톡 속에서도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많아졌고 설날, 추석같이 긴 휴무에는 당연한 듯, 그리고 참아왔던 듯 모두 해외로 나가기 바빠 보였다. 물론 나는 빼고.


나에게 해외여행이란 평생 내가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닌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를 고민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이방인이고 그렇다고 내 본적이라 할 수 있는 대만은 한 번도 거주해 본 적이 없어 신분증, 즉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온전하 대만사람도 아닌 애매한 회색 지역의 사람. 그게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래서 이 애매한 신분으로 내가 해를 끼치지 않는 신분이 명확한 사람임을 입증해야 함과 동시에 해외 출국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나 비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성년자였을 때는 부지런한 부모님의 은혜로 종종 이리저리 해외여행을 다녔던 것 같은데 온전히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진행을 하려 하니 버거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직장 출근과 병행한다니 더욱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매번 시간과 돈 모두 여유가 있을 때에도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할 뿐 나는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그저 편히 떠날 수 있는 그들의 자유를 부러워할 뿐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라는 건 정말 생각보다 매우 한정되어 있다. 일단 “내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을 가려해도 여권을 발급받으며 출입국허가증을 받아둬야 한다. 중국의 경우도 여행증, 이라는 비자를 직접 중국대사관에 하루 내 줄 서서 돈을 지불하고 조건이 갖춰져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대행이라는 시스템이 있어 조금은 형편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함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외의 국가들은 거의 다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며, 그 비자를 받기 위해서도 각국의 방책과 필요서류, 제출 금액, 비자 신청 방법 등이 모두 달라서 직접 대사관의 찾아가 나의 상황과 신분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받아야 한다. 근데 결국 대사관 직원들도 공무원. 평일의 짧은 시간 밖에는 운영을 하지 않고 그나마의 예약도 거의 불가능했던 경우가 많아 대기 시간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만일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 정말 큰 맘을 먹고 비자를 받기 위해서만의 연차를 써야 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저 포기해 버리는 게 편했다. 그 모든 과정을 “도전“과 ”특별한 경험“, ”추억“으로 소비해 버리기엔 돈도, 감정도 너무나 많이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불쑥 올라오는 비교의 감정, 주변 한국 친구들은 큰 걱정도, 부담도 없이 그저 표와 숙소만 끊으면 언제든 가볍게 다닐 수 있다는 편리함에 복잡한 마음이 들어버리게 된다. 아직도 나의 버킷리스트 맨 윗자락에는 공항에 가서 아무 비행기표나 끊고 바로 여행 가기, 가 있을 정도이다.






직장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삶의 마지막 방학, 돈도 시간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 이번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또 어디일까? 애써 그나마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들의 가고 싶은 이유들을 찾으며, 더 화려해 보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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