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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Jan 13. 2024

세상은 아직 조금 따뜻한가 봐요

매일 쓰는 짧은 글: 240113 



시험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조금은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술 한잔 하기! 여러모로 알아보다 영종도로 와 조개구이에 소맥 한 잔 말아먹기로 했다. 엄청나게 춥지도 않고 찰랑거리는 밤바다 소리. 당장 해야 할 공부나 업무가 없어 마냥 평온한 마음으로 모든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얼큰하게 한 잔 하고 슬렁슬렁 걸어 나와 잠시 숙소에 가서 더욱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즐거워 사진이나 찍으려 핸드폰을 찾았으나 더듬거리며 만져본 주머니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뭐지? 숙소에 두고 왔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친구에게 핸드폰을 두고 온 것 같다고 하며 다시 숙소로 같이 돌아왔다. 근데도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보이지 않는 핸드폰. 그제야 술기운이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 갔지, 내 핸드폰. 


가장 먼저는 식사를 했던 조개구이집에서 갔는데 맡아둔 것이 없다고 하여 식은땀이 한 바가지로 흘러내렸다. 구체적으로 진짜로 핸드폰이 사라졌을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떠올려보게 됐다. 그러다 친구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계속 걸었는데 몇 번의 시도 끝에 누군가가 받아줬다. 얼핏 듣기에도 어린 여성분의 목소리. 혹시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냐고. 그랬다. 핸드폰에만 집중하느라 지갑도 같이 없어진 줄도 몰랐는데 같이 주머니에서 빠졌나 보다. 어디서 찾으셨냐고 여쭈니 그냥 어두운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조금 달아오른 술기운에 시원한 밤공기를 맞아 기분이 좋아져 조금 뛰었던 것 같은데 그때 빠진 것 같았다. 전화를 끊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니 바로 근처라고 하셔서 바로 접선해서 받아왔는데 알고 보니 내 핸드폰과 지갑을 주워주신 분도 10분 전쯤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막 찾은 참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인연인지. 그래서 남일 같지 않다고 하시며 건네주시는데 90도로 인사를 드리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뭐라도 보상을 해드리고 싶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거절하시고는 여행 온 건데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자고 말씀해 주시고서는 쿨하게 돌아서셨다. 한 손에는 오모가리 김치찌개 컵라면을 들고 가시면서. 


숙소로 돌아와도 얼떨떨한 마음. 평소에 물건을 잘 챙기려고 이래저래 신경을 더 많이 쓰는 편이라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요동치는 마음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감사한 분께 더 무슨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도 연락조차 이제는 닿을 수 없어 뭐라도 쥐어 보내드릴걸 후회만 한 밤. 앞으로 나도 누군가에게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만 몇 번 되뇌며 편의점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절해 버렸다. 


이름도 모르는 그분, 올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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